'빙속여제'로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이상화(25·서울시청)를 우리는 하마터면 보지 못할 뻔했다. 10여년 전 스케이트를 잠시 접었던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서울 은석초 1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고 바로 이듬해부터 '스케이트 신동'으로 불렸던 이상화는 3학년 때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당시 이상화의 아버지는 고교 교직원이었다. 하지만 스케이트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이는 아이에게 부모는 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공장 일에 뛰어들었고 오빠는 중학교에 올라가며 동생을 위해 스케이트를 포기했다.
가족들의 희생을 모를 리 없는 이상화는 이후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었다. 휘경여고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돼 17세였던 2006년부터 올림픽에 출전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뒤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런 이상화가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아레나에서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74초70(37초42·37초28)의 올림픽신기록으로 두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카트리오나 르메이돈(캐나다)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우승할 때 세운 단일 레이스(37초30)와 합계(74초75) 올림픽기록을 12년 만에 한꺼번에 경신한 것이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번째 금메달이자 첫 메달. 이상화는 "(밴쿠버 때의 금메달이) 반짝 금메달이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 더 꾸준히 열심히 연습해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를 키워드로 돌아봤다.
◇0.36=2위 올가 팟쿨리나(75초06·러시아)에 0.36초 앞섰다. 1,000분의1초를 다투는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에서 0.36초는 어마어마하다. 역대 올림픽 이 종목에서 1·2위 사이의 최다 시간 차다. 1998년 나가노 대회 때 르메이돈이 수잔 아우크를 0.33초 차이로 제친 것이 종전 기록이다. 이상화는 "지난해 소치세계선수권 때가 빙질이 더 좋고 느낌도 더 나았는데 어떻게 오늘 올림픽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아시아 선수가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기는 남녀를 통틀어 이상화가 처음이다.
◇눈물=이상화는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5위를 하고도 분해 울었다. 17세에 불과한 여고생이었지만 가족에게 반드시 올림픽 메달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리노에서의 눈물을 4년 뒤 밴쿠버에서 기쁨의 눈물로 바꾼 이상화는 소치에서도 울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면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감동이 밀려왔다"고 했다. "1차 레이스가 끝난 뒤에도 눈물이 났다"며 "그동안 훈련해온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서 그랬다"고 밝혔다. 이상화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억지로 잊어가며 훈련해왔다. 그는 "무리하면 물이 차고 아파서 재활을 병행하고 있지만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우사인 볼트=이상화에게 '빙판 위의 볼트'라는 새 애칭이 붙었다. 은메달을 딴 팟쿨리나는 이상화의 경기에 대해 "마치 우사인 볼트 같았다"고 경의를 표했다. 밴쿠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이번 대회 6위인 예니 볼프(독일)도 "이상화의 기술은 완벽했다"고 인정했다. 남자 선수들과의 훈련을 통해 약점인 스타트를 보완한 이상화는 초반 100m 기록을 10초30대에서 10초20대 이하로 줄인 끝에 소치에서 새 역사를 썼다.
◇평창=이번 대회 6위인 볼프의 나이는 35세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 이상화의 나이는 29세. 3연패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기록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올림픽신기록을 세운 것만 봐도 희망적이다. 종전 올림픽 기록은 해발 1,425m에 자리잡아 공기저항이 적고 빙질까지 좋아 '기록의 산실'로 불리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상화는 해발 4m에 불과하고 빙질도 까다로운 소치 아들레르에서 12년 만에 신기록을 썼다. 케빈 크로켓(캐나다) 코치는 "이상화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2018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