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충렬씨 "타향살이 외로움 달래려 한국 근대 팩션 출간"

"한번 文靑은 영원한 文靑… 사실 확인에 3개월 걸리기도"


35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문학청년 지망생이 꿈을 잃지 않고 구한말 풍속화ㆍ인물화 등을 모으며 '팩션'을 잇달아 출간해 주목을 받고 있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한 작품. 세번째 책 '한국 근대의 풍경(김영사)' 출간에 맞춰 귀국한 재미작가 이충렬(57ㆍ사진)씨는 "한번 문청(문학청년)은 영원한 문청"이라며 "태어났으니 한 가지 꿈은 이루고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35년 전인 지난 1976년 문학청년을 꿈꾸던 대학생 이충렬은 부모를 따라 미국 이민을 떠났다. 그가 '부모님의 경제적 망명'이라고 표현한 이민생활은 슈퍼마켓ㆍ주유소ㆍ봉제공장 등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가슴에는 세월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열정이 있었다. 글쓰기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그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국 관련 그림을 모으고 작가 등단을 위해 부단히 습작을 했다. 버린 종이가 키 높이에 이르자 그는 등단했고 모인 그림과 자료는 문학청년의 꿈을 이루는 재료가 됐다. 이씨는 "15년 정도 생존을 위해 일하고 나니 그 허망함은 말로 할 수 없었다"며 "미국에 조선시대 그림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신기해 부지런히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수집한 작품 중에는 미국ㆍ영국 등 서구작가들이 19세기 후반 선교사 등으로 조선에 왔다가 그린 풍속화ㆍ인물화 등 한국의 근대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주요작품은 2006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전'에 출품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가 되는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러 차례 등단에 퇴짜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는 "한국을 떠난 지 오래돼 국어실력이 형편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거절당해도 크게 실망스럽지 않았다"며 "그럴수록 국어사전을 더 찾고 읽게 됐다"고 말했다. 노력 끝에 그는 1994년 마흔의 적지 않은 나이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러나 일상은 그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이씨네 잡화상(Lee's Discount Store)'을 15년 이상 운영하고 있는 그는 "세 자녀가 한꺼번에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후반에는 1년에 학비만 1억원 이상이 들어 문청의 꿈은 잠시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며 "부모 역할이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아 이제 본격적인 전업작가를 선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부터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일본 인터넷신문 'JP뉴스'에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근대'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반응이 뜨거워 한국에서도 책 출간의 러브콜이 잇따랐다. 두번째 책 '간송 전형필(2010)'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를 비롯해 간행물윤리위원회 등 7곳에서 권장도서로 선정됐다. 근대 사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미 정부기록보관소(NARA)에서 한국 관련 기록을 찾았다. 황성신문 등 신문ㆍ잡지, 고종실록 등 사료를 인터넷과 전화로 확인하고 때로는 인터넷 헌책방에서 관련 자료를 발견하기도 했다. 사실(fact) 하나를 확인하는 데 3개월 이상 걸리기도 했다. 이씨는 차기작으로 혜곡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소재로 한 팩션에 몰입하기 위해 오는 7월4일 애리조나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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