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2월 12일] <1619> 뉴룩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2월 12일] 뉴룩 권홍우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947년 2월12일 10시30분, 프랑스 파리 몽테뉴 30번가. 중년의 무명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42세)가 첫 발표회를 열었다. 솜씨 좋은 패션 미술가로만 알려져 있던 디오르는 데뷔 무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대박을 터뜨렸다. 90명의 모델이 무대를 밟으며 새로운 의상을 선보일 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물자절약과 근면이 강조되던 전시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시대상황에서 우중충한 밀리터리룩을 완전히 뛰어넘는 화려함과 여성스러움이 의상으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패션쇼를 현장에서 지켜본 유명 패션잡지 '바자'의 편집장은 '정말 새롭다(It's such a new look)'라고 감탄했다. 당초 이름이 '코롤라(Corolla)'였던 디오르의 패션 컬렉션은 곧 '뉴룩(New Look)'으로 불리며 세계 패션의 대세로 굳어졌다. 탄력을 받은 디오르는 같은 해 진출한 향수 사업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고 대부호로 떠올랐다. 1957년 5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뉴룩뿐 아니라 지그재그라인ㆍ튤립라인ㆍH라인ㆍA라인 등 수많은 패션 트렌드를 창출해냈다. 10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동안 거대한 족적을 남긴 디오르의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전쟁 분위기에서 벗어난 디자인과 각국 정부의 인력구조 재배치 정책이 맞물린 결과다. 전쟁기간 중 무기며 의복을 만드는 생산직으로 자리잡은 여성을 공장에서 내보내는 데 화려한 옷차림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미끼이자 도구였다. 여성들이 떠난 일터에는 남성들이 돌아왔다. 제대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기 위해 패션붐이 의도적으로 진작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디오르는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패션 디자이너의 이름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디오르가 최초다. 뉴룩은 그 시발점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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