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사진) 하나은행장이 오는 28일 정기주총을 끝으로 행장 생활을 마감한다. 김 행장은 10월께 출범하는 지주회사 회장 자리를 예약해두고 있으며 행장에서 물러난 후 지주회사 설립에 매진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 65년 옛 한일은행에 첫발을 내디딘 뒤 68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의 창립 멤버로 뛰어들어 증권부장ㆍ영업부장ㆍ상무ㆍ전무 등을 거치며 잔뼈가 굵었다. 90년 회사채 주선 1조3,000억원을 달성해 모든 증권사를 포함한 29개 주간사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제2금융권에서 닦은 실력은 은행에서도 통했다. 91년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전환했고 97년 그는 마침내 행장 자리에 올랐다. 때문에 은행업무뿐 아니라 증권ㆍ자금시장까지 두루 섭렵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다양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금융권 최초로 영업점장 공모제를 실시하고 객장 내에 증권보험 창구를 만들었다. 또 사업부제와 PB제도를 도입하고 30대 외부 임원을 영입하는 등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후 충청ㆍ보람ㆍ서울은행을 잇따라 인수합병하면서 금융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2002년 서울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신속하게 합병 프로그램을 가동, 예금이자에서 수수료에 이르기까지 일사천리로 통합에 나서 조직간 불협화음을 최소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3년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때도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시련을 극복하기도 했다. 김 행장의 열린 경영은 이제 하나은행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사훈을 만들지 않은 것도 그의 생각이다. 사훈이라는 틀에 갇히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전직원이 참여해 다음 연도의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참여경영도 직원들을 은행의 주인으로 만든 그만의 노하우다.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그가 전직원이 참여한 산행에서 지점 근무자인 텔러까지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며 대화를 나눴던 일은 아직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김 행장은 요즘도 직접 ‘반상회 영업’에 참여한다. 필요하다면 기업을 몸소 찾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영업맨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지점장실을 없앤 것은 지점장이 고객을 직접 만나 영업에 나서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김승유=하나은행’이라는 명제는 이제 ‘김승유=하나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2009년 세계 100대 은행으로의 도약을 내세운 그가 앞으로 보여줄 리더십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