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시대의 국력은 군대의 양적 규모가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은 기술이 국력임을 실감케 했다. 원자탄이 2차대전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었듯이 천하를 호령하던 독재자도 첨단장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작년 초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공계 연구원의 56%가 비이공계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실시한 청소년의 장래 희망직업 조사에서도 전문직이 39.6%, 연예인이 24.5%인 반면 교수와 연구직은 2.2%, 과학기술인은 0.4%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 기술인력의 문제는 공급측면에서 대학교육의 질적저하를 들 수 있다. 공학교육이 학부에서 대학원 중심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현장교육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공 이수학점도 36학점으로 미국의 48학점, 일본의 67학점에 비해 크게 못미치고 있다. 교수와 학생의 비율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연간 8만5,000명의 이공계 졸업생중 취업자는 50%를 겨우 넘고 있다.
대학졸업생이 넘쳐 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당장 쓸만한 인재를 찾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 인사담당 책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 및 기술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26%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수요측면에서도 외환위기후 기업들이 R&D투자를 축소하면서 연구인력의 사기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비해 대우도 상대적으로 나빠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가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의 주역인 이공계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이공계 이탈을 촉진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라면 다음과 같은 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이공계생에 대해서는 전원 장학제도를 실시하고 복지제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정부는 이공계 인력에 대해 장학제도를 확대하고 있으나 전체 재학생 가운데 30.7%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 물론 이공계에만 장학혜택을 늘리는데 대해 이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현재의 상황은 대학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공계의 위기, 특히 기계렸?鈞조선 등 우리경제를 버티고 있는 전통산업과 직결된 학과의 위기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공계 대학의 질적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대학의 개방은 불가피하나 개방에 앞서 외국수준의 실험장비와 교수요원의 확보 등 공정경쟁을 위한 여건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대학들이 앞다투어 산업현장의 CEO를 강사로 초빙하고 있고 대학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용제품을 설계에서 제작 및 시험평가에 이르는 전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졸업종합설계(capstone design) 과정은 산학협동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산학협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대학별로 주변기업과 산학협정을 체결하고 모든 중소기업의 애로를 대학이 책임지고 해결해 주는 방안을 도입하고 대학 3학년이 넘으면 취업을 허용하여 실무와 공부를 동시에 수행케 하는 것도 교육의 현장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공계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앞장서야 한다. 이공계에 장학금을 확충하고 공직 진출기회를 확대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졸업 후 사회진출 과정에서 차별적인 요인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21세기는 인재확보전쟁(War for Talents) 시대이다. 미국에서 기업이 시설투자를 10% 늘렸을 때 생산성은 3.6% 향상된 반면 교육훈련투자를 10% 늘일 때 생산성은 8.4% 증가했다. 경제사가인 란데스(D. Landes)는 이공계인력의 확보는 국가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참여정부는 과학기술국가 건설을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했고 올해를 `제2 과학기술 입국의 원년`이라고 선언했다. 이공계 출신이 임금이나 승진, 보직에 차별받지 않는 것은 물론 여의도로, 과천으로, 기업CEO로 제약없이 뻗어나갈 때 동북아기술중심이 실현되는 것이다.
<서울산업대학교 총장 이희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