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3일] XYZ사건

[오늘의 경제소사/4월3일] XYZ사건 권홍우 사람들이 호전적으로 변했다. 외국인 규제도 강해졌다. 1798년 4월3일 폭로된 XYZ사건의 여파다. 일부 미국인들은 전쟁을 외쳤다. 사건의 단초는 1794년의 런던조약 . 독립전쟁에서 발생한 피해를 일부 보상한다는 미ㆍ영간 합의에 프랑스가 열 받았다. 독립전쟁을 지원하느라 재정이 거덜난 상황. 프랑스는 ‘숙적인 영국’과 협조하려는 ‘배신자 미국’을 가만두지 않았다. 응징 수단은 선박 나포. 상선 300여 척이 프랑스에 끌려가자 다급해진 미국은 사절단을 보냈으나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프랑스가 공식 사과와 정식차관 제공뿐 아니라 개인 뇌물까지 요구했기 때문. 미국 사절단은 ‘프랑스 외교관 XㆍYㆍZ 3명이 뇌물을 원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가 폭로된 게 XYZ 사건이다. 폭로자는 애덤스 대통령. 국가원수가 민감한 사안을 직접 까발린 이상 다른 선택은 없었다. 선전포고만 없었을 뿐 미국과 프랑스는 2년 동안 선박 나포전을 벌였다. 목재ㆍ조선업체의 로비 속에서 미국은 독립전쟁 후 해체했던 해군을 다시 만들었다. 불과 3표차로 당선돼 약체라고 놀림받다 전쟁 덕에 힘을 얻은 애덤스는 ‘외국인 규제법ㆍ이민제한법ㆍ선동금지법ㆍ보안법’ 등을 쏟아내며 재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과도한 재정지출과 경제난 탓이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의 행보는 XYZ사건 직후와 비슷하다. 위헌 논란 끝에 통과된 부시의 ‘애국법’은 애덤스가 양산한 법률들과 같은 맥락이다. 간발의 차이로 당선된 점이나 부자(父子) 대통령이라는 점까지 똑같다. 전비 때문에 재정이 더욱 나빠졌다는 점도 동일하다. 결말까지 같을지 궁금해진다. 200여년 전의 결과는 전쟁 옹호론자들의 몰락이었다. 입력시간 : 2006/04/02 17:06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