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李康逢차장한국산 술에 한국 정부가 부과하는 세율을 세계무역기구(WTO)가 결정하는 이상한 상황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한·미간 주세 분쟁과 관련,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WTO패널이 직권으로 중재 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소주를 보호할 목적으로 같은 증류주인 위스키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등 차별관세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명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소주 세율 인상을 제의했으나 미국측은 반대로 위스키 세율 인하를 요구하며 협상을 결렬로 몰고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의 주세는 출고가 기준 소주가 35%, 위스키는 100%.
앞으로 WTO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모르지만 관계자들은 과거 미·일 소주분쟁시 WTO가 미국·유럽연합(EU) 등 서구측 주장을 대폭 수용한 점을 들어 이번 경우 역시 소주세율 인상 보다는 위스키 세율 인하 쪽으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세율 조정을 기다리는 업계 입장은 각양각색이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쪽은 소주업계. 소주 세율을 올리거나 위스키 세율을 내리거나 위스키와의 가격차이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소주 매출이 줄어들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초긴장상태에서 대책 마련에 급급한 상황이다.
반면 위스키업계는 말은 안하지만 세율 인하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절반이하로 줄어든 위스키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고가기준 196%에 이르는 비싼 세금을 물어오던 맥주업계 역시 위스키 세율 인하에 따른 세율 동반인하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위스키 세율인하가 위스키 보다 거의 두배에 달하는 맥주세율을 내리는 계기를 마련하지않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위스키·맥주세율까지 인하가 전체 세수 감소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가장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율 인하로 줄어든 세수를 메울 방안 마련이 최근 IMF사태로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간에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술을 선호해오던 주당(酒黨)들의 입장이 궁금하기만 하다. 대폭적인 주세율 조정이 얼마 안 있어 한국의 주류문화를 대폭 바꾸어놓을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질에서 더 순화된 위스키 판매가 늘어나면서 소주에 길들여진 주당들의 입맛이 위스키쪽으로 기울 것이다.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안주 역시 한국스타일의 돼지갈비 보다는 구미식 훈제쪽으로 모양새가 변화할 것이다.
술집 분위기가 서양식으로 바뀌는 것도 예상해야 한다. 부담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종래 텁텁했던 주류 문화가 무드를 중시하는 고급스런 분위기로 변화한다. 그렇게 될 경우 주당들로서는 새로운 문화에 대처해 나가야 할 부담이 크지않을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할 주당들로써 최근 주세 분쟁에 대해 가만히 앉아 있을 입장이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