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기업 IMF고통 하도급업체에 전가

「대기업 H사는 고속도로 정보안내 전광판시스템 제작을 중소기업 B사에 의뢰한 후 발주시기가 조금 연기되고 설치장소가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미 납품한 전광시스템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또 이미 제작을 마친 전광시스템마저 받아주지 않았다」「국내 굴지의 재벌 계열사인 H호텔은 같은 계열사 S중공업 직원들에게 설선물로 나눠줄 안락의자 2,000세트 제작을 S사에 의뢰한 후 S중공업의 사정으로 물량이 축소되자 300세트만 수령하는 대신 6,000만원을 운영자금으로 지원해 주다 나중에는 지원자금마저 회수해 갔다」 당국의 강력한 단속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대기업들의 하도급 횡포가 갈수록 극성을 떨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닥친 지난 97년연말 이후부터는 환율상승, 경기침체에 따른 부담을 하도급업체에 떠안기는 경우가 빈발해 중소기업들을 도산의 수렁으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3년 218건에 그쳤던 하도급횡포 적발 건수는 지난해 579건으로 5년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불공정 하도급거래 행위로 적발된 건수는 지난 94년 224건, 95년 387건, 96년 494건, 97년 534건등으로 줄곧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하도급 사건을 유형별로 분석해 보면 납품을 받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대금미지급 사례가 총 321건으로 전체의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또 어음할인료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도 118건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금지급을 미루거나 부당하게 대금을 결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뚜렷한 이유없이 제품을 반품하거나 지연이자를 주지 않는 사례도 다수 적발돼 하도급횡포의 심각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일부 대기업들은 하도급업체에게 계약서를 써주지 않기도 했다. 하도급 횡포는 특히 건설업에 만연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불공정 하도급거래 579건의 87%에 해당하는 501건이 건설업에서 적발됐을 정도다. 공정위 관계자는 『엄밀하게 따져 발주자로부터 현금으로 대금을 결제받은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에는 어음을 끊어주는 행위도 불공정거래에 속하지만 이 정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원사업자)들의 불공정 하도급거래행위가 전업종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올해에는 단속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대기업들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하도급횡포는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의 기초 기반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근절시켜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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