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방어장치 논의할 때 됐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하며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양측의 법정 공방이 본격화될 경우 사태 장기화까지 우려된다고 한다. 이번 엘리엇을 비롯해 과거 삼성물산-헤르메스 사건이나 SK-소버린 사태, 칼 아이컨의 KT&G 공격 등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우리 기업들의 취약한 지배구조다. 엘리엇을 비롯한 이들 외국계 투기자본은 겉으로야 주주권 행사라는 주주자본주의를 내세우지만 대부분의 경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약점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데 초점을 맞춘다. 헤르메스나 소버린 사태에서도 투기자본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후 물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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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이 주가를 끌어올린 뒤 보유지분을 팔고 나가는 이른바 '먹튀' 행태를 재연한다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주가 하락으로 소액주주들에게도 큰 피해를 줄 게 뻔하다. 국내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번번이 노출되는 데는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입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그간의 기업정책 기조가 소유분산 유도에 집중되다 보니 10대그룹 상장사 6곳 중 1곳의 외국인 지분율이 총수 및 계열사 우호지분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자연히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기 위해 계열사 간에 주식을 나눠 갖는 순환출자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대기업 중 상당수가 헤지펀드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를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대주주가 경영권 분쟁에서 쓸 수 있는 방어수단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이번 기회에 차등의결권제 등 경영권 방어장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국 기업인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한 것도 결국은 미국에서 허용하는 차등의결권제도 때문이었다. 7% 지분에 불과한 마윈 회장이 마음껏 경영수완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이다. 국내 기업들이 매번 외국계 헤지펀드의 놀이터가 되도록 둘 수는 없다. 흔히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지만 자본가에게는 엄연히 국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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