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흥아타이어 사장실에선 회장과 임원간의 보기 드문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장님 무리입니다.”(A임원) “뭐가 무리란 말인가”(강 회장) “매출 규모가 훨씬 적은 우리가 자금난에 허덕이는 우성타이어를 인수한다면 조만간 다시 파산할 겁니다.”(A임원) “이보게, 그래서 우리가 인수해야 한다는 걸세.”(강 회장) 국내 3위의 타이어업체를 이끌고 있는 강병중(68ㆍ사진) 넥센타이어 회장 특유의 뚝심과 저돌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흥아타이어를 인수했던 강 회장은 사명을 넥센타이어로 바꾼 이후 연평균 22%의 눈부신 성장세를 거듭했다. 인수 초기 1,800억여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지난해 4,767억원으로 불어났고, 8%에 그쳤던 내수시장 점유율도 20%로 높아졌다. 주변 사람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며 타이어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강 회장.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강 회장을 만나 그 비결과 경영철학을 직접 들어보았다. 경남 양산공장에 마련된 회장실은 솔직하고 직선적인 그의 성격답게 이렇다 할 장식이 없이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경상도 스타일’로 대뜸 왜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우성타이어를 인수했는지 물었다. 강 회장은 “40년 가까이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남이 하지 않는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너 최고경영자(CEO) 특유의 역발상이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에 뛰어들기란 사실 쉽지 않다.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당장에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도전하기엔 자금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이런 의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적어보이고 단기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의 뚝심이 물씬 느껴진다. 업계에서 붙여준‘타이어 강’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끈끈한 뚝심을 자랑하는 강 회장이지만 시련도 적지않았다. 강 회장은 2003년 주력 사업이었던 바이어스(대형 차량용) 타이어 부문을 구조조정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인 UHP(초고성능)타이어 중심으로 체질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노동조합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강 회장의 회고. 강 회장은 노조원들을 직접 만나“기업의 이익은 모든 임직원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것이다. 단 한명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투자를 하겠다. 나를 믿어달라”고 설득했다. 투명한 경영과 공격적 투자를 강조한 강 회장의 일관된 모습에 노조도 신뢰를 보냈다. 결국 강 회장은 지난 2003년 바이어스 라인을 정리하고 자본금의 2배가 넘는 1,100억원을 투자해 UHP타이어 생산라인 구축에 성공했다. 강 회장의 이러한 경영철학은 넥센타이어가 출범 이후 8년 연속 가장 먼저 주주총회를 여는 전통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회사 실적이나 투명경영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강 회장은 지난해 홍종만 부회장(전 삼성코닝정밀유리 대표)을 영입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고 본인은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섰다. 대신 넥센타이어가 중국 칭따오에 추진 중인 공장설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강 회장은 “넥센타이어의 매출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5%에 달하지만 넥센타이어는 여전히 세계 타이어 업계 26위에 머물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전체 매출 중 20%에 그치고 있는 UHP타이어의 판매비중을 오는 2010년까지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오는 2010년에는 매출 1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내리 3대째 역임한 강 회장은 지역경제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실제 강 회장은 최근 10년간 가장 성과로 평가받는 한국선물거래소와 르노삼성자동차 공장 유치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부산지역 경제발전에 헌신해 왔다. 그는 “지역경제가 살아나야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최근 대선을 의식해 수도권공장설립 억제정책을 완화하려는 조짐이 나타나는 데 이는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른바‘서울공화국’현상을 극복하려면 정부가 강력한 의지로 국토균형발전정책을 실시하고 대기업들이 부산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희를 앞둔 강 회장은 후계구도에 대한 속내도 털어놓았다. 그는 “아들인 강호찬 부사장이 넥센타이어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계획”이라며 “시장과 경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경영은 혈통보다 능력이 결정한다는 평소 지론을 남보다 앞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