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날이 왔다. 1971년 2월15일, D데이(D-day). 영국이 화폐체계에 십진법(decimal)을 도입했다. 종전 기준은 12진법과 20진법이 혼용된 ‘1파운드=20실링=240펜스’. 여기에 21진법ㆍ5진법ㆍ2진법도 섞어 섰다. 21실링이 1기니, 5실링은 1크라운, 2실링은 1플로린. 기억하기도 힘든 교환체계는 ‘1파운드=100신펜스’로 바뀌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이 1,200년 이상 누적된 화폐체계를 뜯어고친 이유는 복잡한 교환단위를 유지할 경우 파운드의 지위가 약화될 뿐 아니라 고립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D데이는 군사작전처럼 치러졌다. 동전 수송에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영국군이 동원되고 1만4,500여개 은행은 11일부터 나흘간 영업을 정지한 채 장부를 정리하며 D데이를 기다렸다. 기기교체 등에도 3억1,420만달러가 들어갔다. 철저한 준비를 거쳤어도 습성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십진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단위변경으로 소액품의 가격도 슬그머니 올랐다. ‘D데이는 Derangement-day(교란의 날)’이라는 비아냥과 혼동, 전국적 파업이 겹쳐 물가 상승률이 1970년의 5.6%보다 훨씬 높은 9.4%를 기록하는 와중에서도 십진법은 뿌리를 내렸다. 인식의 틀에 젖어 십진법을 거부했던 영국인의 얘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도 버린 척관법(尺貫法)을 우리는 끼고 산다. 아파트나 토지 면적을 따질 때 ㎡보다 평(坪)이 익숙하다.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영국을 다시 보자. 정부의 공식 준비기간만 5년. 십진법 개정안이 의회에서 처음 부결된 1824년부터 치면 147년간의 논의를 거쳤다. 우리 정부는 언론의 표기법을 탓하는 데 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