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인문학의 경영 접목


경영환경이 복잡해지고 갑작스러운 위기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기술∙가격 차별화만으로 경쟁위기를 점하기 어려워지면서 통계적 분석기법과 금융공학∙기술 위주의 경영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균형 잡힌 인문학적 사고, 인문학적 상상력∙통찰력은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경영자(CEO)들은 삼성경제연구소 설문조사에서 97.8%가 '인문학적 소양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 82.7%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부분 CEO의 인문학 과정 참여나 사내 인문학 강좌 개설 등 다소 소극적인 방법에 머물고 있으며 보다 적극적인 인문학 전공자 채용이나 전문조직 운영은 아직 활발하지 못했다. 기술 위주 경영에 대한 반성 많은 기업이 조직∙임직원의 창의성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채용 면접 때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평가하는 구글은 올해 신규 채용자 6,000명 중 5,000여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충원하겠다고 발표했다. IBM은 임원교육 과정을 인문학 중심으로 구성하고 고전을 읽은 뒤 기업의 변화방향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토이스토리' '카' 등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픽사(Pixar)는 사내 교육기관에 글쓰기∙문학∙철학∙즉흥연극 등 100여개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직원에게 주당 4시간의 교육시간을 보장,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문화를 진단하고 변화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인문학의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모든 공동체 문화가 신화∙상징∙의례로 구성돼 있다는 종교학 방법론을 접목, 아리따움 매장 직원들에게 뷰티컨설턴트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역사적 안목을 중시하는 인문학은 미래 경영환경 예측에도 유용하다. IBM∙지멘스∙인텔 등은 인문학자를 포함한 전담조직을 꾸려 미래를 전망하고 기업의 중장기 전략과 비전 수립에 활용한다. 제품 개발과 디자인 분야에서도 인문학의 역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패턴과 직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반영해 단순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연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인력의 15%를 차지하는 인문학∙사회과학 전공자들은 디자인∙기술 인력과 협업하며 디자인과 마케팅, 선행기술 간의 원활한 소통을 중재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허브 역할을 한다. 일부 기업은 특정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행동∙감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인류학의 민족지학 기법 등을 활용해 이들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무의식적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 개발 및 마케팅에 반영하고 있다. 기존 기업문화와 조화 이뤄야 경영과 인문학의 접목은 상호 간 지식의 접목이 아니라 관점의 접목이다. 조직의 다양성 배양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문학적 관점∙사고가 기존 기업문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인문학적 식견과 경영∙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접점 역할을 하는 매개자(Facilitating Unit)도 필요하다. 특히 관점이 다른 사고들이 양립할 수 있는 조직적 토양, 인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CEO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인문학적 가치관∙세계관을 바탕으로 경영철학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존재 목적에서부터 브랜드 이미지, 제품 개발 및 디자인까지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경영철학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도 균형 잡힌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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