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25일] 현대건설 전신 현대토건 설립

허름한 양복에 뒷굽이 다 닳은 구두, 아무렇게나 쓸어올린 머리카락,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가식 없는 말투.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이미지는 소탈하고 친근하다. 그래서인지 정 전 회장이 맨손으로 일궈낸 현대그룹도 삼성과는 달리 세련미보다는 투박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지금은 몇 개로 쪼개졌지만 지난날의 현대그룹은 전형적인 굴뚝산업인 건설업을 모체로 했다. 경일미곡상회 주인 정주영은 쓰러져가는 자동차수리공장(아도자동차수리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1947년 5월25일에는 현대토건을 설립했다. 자동차 수리 견적서를 넣기 위해 관청과 미군부대에 드나들면서 건설업자들이 거액의 공사비를 수금하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업다운 사업의 시작이었다. 1950년 1월, 정 전 회장은 현대토건과 아도자동차수리공장의 후신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안되면 되게 하라.’ 건설업은 정 전 회장 스타일에도 딱 맞았다. 6ㆍ25동란이 터지면서 부산으로 내려온 정 전 회장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 때 UN묘지에 잔디를 심어달라는 주한미군의 제의에 낙동강의 보리를 베어와 그곳에 심었다. 이 같은 악착스러움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군에서 발주되는 대부분의 공사를 수주하는 바탕이 됐다. 1960년대 후반 현대건설은 해외로 눈을 돌리며 규모를 키워나갔다. 비록 적자가 났지만 베트남의 파타니나라티왓 공사 수주는 국내 건설업 사상 최초의 해외공사 수주로 기록된다. 이후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베트남의 크고 작은 공사를 수주한 데 이어 1970년대는 중동으로 눈을 돌려 세계 각지의 공사를 따내면서 현대건설은 국내 최고의 건설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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