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산업재해율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발표를 하고 나선 가운데 산재율의 신뢰도에 많은 의문이 일고 있다.
산재율 산정의 바탕이 되는 산재보험과 관련해 사업주는 신고를 꺼리고 근로자도 업주 눈치를 보며 빠뜨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1일 노동계에 따르면 산재보험 및 보상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의 산재 통계가 사업주나 근로자에 팽배한 신고 회피 문화로 인해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재보험 신고 누락 다반사..신뢰도 낮아
노동부는 최근 산재율이 4년만에 감소했다고 밝혔으나 노동계는 곧이 듣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산재율이 0.85%로 1999년 0.74%에서 2000년 0.73%로 낮아진 뒤2001년 0.77%, 2002년 0.77%, 2003년 0.90% 등 증가세에서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부의 산재예방 정책이 효과를 거둔 결과라는 자평에 대해 노동계는 "믿기 어려운 통계"라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과건강포럼 김신범 사무국장은 "산재통계가 산재보상 보험법에 따른 요양신청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상당수가 재해를 당하고도 요양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산재율이 높으면 노동부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특별 근로감독을 받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은폐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산업안전공단의 장기발전계획인 `뉴코샤(NEW KOSHA) 2010'에서는 산재 은폐 발굴건수를 2001년 1천97건, 2002년 1천33명, 2003년 674명 등으로 파악했다.
산재율이 높을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우려해 해당 근로자와 합의하에 산재보험 신청대신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공상(公傷)으로 처리하는 사례도빈발하고 있다.
최근 한 화학업체에서 조합원 설문 결과 지난해 산재를 경험한 57명 중 8명(14%)만이 산재로 처리했고 26명(47%)은 공상, 21명(37%)은 건강보험, 기타 5명(9%) 등으로 나타났다고 전국화학섬유연맹이 소개했다.
◆사망자 영국 20배불구 산재율은 비슷
국내 산재 통계의 허점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2000년 기준 산재로 인한 사망만인률(근로자 1만명당 재해 사망률)은 한국이 1.49%로 미국(0.36%), 영국(0.07%)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데도 산재율은 0.73%로 미국(2.50%), 영국(0.67%) 등보다 훨씬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미국보다 4배나 많은데도 산재율은 3분 1수준에 불과하고 영국보다 사망자는 20배를 웃돌았는데도 불구하고 산재율은 비슷한 수준을 보인 셈이다.
사망 등 중대 재해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보고 의무를 지우고 있어 사업장에서 중대 재해를 숨기거나 누락시키지 않고 그대로 보고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대 재해 이외 요양기간이 비교적 짧은 재해의 경우는 상당수가 은폐나 공상 처리 등으로 공식 신고되지 않아 통계에서 빠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노동연구원 선한승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후 규제완화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재 경험자나 산재율이 높은 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산재 신고가 줄 수 밖에 없었다"면서 "정부가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 목표를 세우고 있어 근로자들의 건강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해율 파악시 단순 사고부터 상해나 사망 등에 대한 통계는 물론 산재보험 보상승인 등을 다양하게 파악해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부는 노동계와 경영계 등이 참여하는 산재통계개선 전담팀(TF)을 구성해 산재통계에 대한 제도 개선과 재해원인 분석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