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급인력이탈] 봉급많다 우선 퇴출 해외경쟁사선 스카우트

「하드웨어를 고치느라 소프트웨어가 날라가는 것을 모른다.」최근 국내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빅딜, 단기 채산성 중심의 사업 재편 등이 지속되면서 5~10년이후 국가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고급 전문인력의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 산업연구원 정진화박사는 『국내 기업이나 정부투자연구기관 등에서 활약하던 고급 전문인력들이 신분 불안과 갈수록 열악해지는 연구토양, 근시안적인 구조조정 진행 등에 밀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탈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정작 경기가 회복돼 R&D(연구개발)투자를 본격화해야 할 시점에 「기술 및 전문성 공동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鄭박사는 『고급 인력을 키우는 것은 결코 단기에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며 『특히 신기술 개발이나 신규사업부문 진출 등은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최근의 양상은 국내 기업의 중장기적인 전략부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고급 인력 이탈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SDS는 지난해 박사급 연구인력을 대상으로 감원조치를 취했다. 이 와중에 상당수의 박사급 인력이 자의반타의반 삼성을 떠나 다국적 기업이나 해외연구소 등지로 빠져나갔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필요에 따라 계열사별 인력감축 목표가 지정됐다』며 『상당수의 인력은 기업의 고가평가등으로 선별 퇴출시켰지만 이 와중에 일부 핵심기술을 갖춘 고급 인력이 자의적으로 퇴사하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정보통신 등 통신장비업체에서도 30여명의 연구 전문인력이 최근 루슨트테크놀러지사로 전직했으며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20여명의 전문 인력들 역시 모토로라반도체통신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최근 인터넷 검색업체인 야후코리아가 영어와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고급 기술인력을, 스위스 제약업체인 아레스 세로노사는 마케팅 전문가를, 독일계 철강회사인 티센메탈은 회계, 비서, 영업분야 등 핵심부서 요원들을 대규모로 공개 모집하고 있어 해당 부문의 전문인력 이탈도 조만간 가속화될 전망이다. ◆해외 경쟁기업으로도 빠져나간다= LG반도체의 연구개발부문에 근무하던 핵심 중간간부 2명이 최근 싱가포르의 신생 반도체업체인 C사로 스카웃됐다. C사는 고급 전문인력의 신분이 불안정해진 LG반도체등을 대상으로 연봉 15만달러 등을 내세우며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부문에 신규 진출했거나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싱가포르나 타이완 기업들은 해당 부문의 노하우 확보를 위해 국내 기업의 전문인력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이며 스카웃 공세는 앞으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계약이 체결될 경우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LG반도체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연구개발 인력들은 대게 표면적으로 해외유학 등을 들어 퇴사하고 있어 경쟁관계에 있는 해외기업체로 옮겨가는지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며 『빅딜 합의이후 직원들 사이에 싱가포르나 타이완 등에서 높은 보수와 적절한 대우를 보장한다면 옮겨가겠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경쟁 국가로 국내 기업의 노하우가 흘러들어갈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위협적인 수준으로 기술이 향상돼 기업 및 국가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왜 빠져나가나= 가장 큰 요인은 신분보장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기업이나 정부출연 연구기관마다 고급 전문인력에 대한 대우를 변변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장기적이고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하는 첨단 산업부문에 대해 기업마다 투자를 보류하거나 축소하면서 고급 인력들의 활동 영역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인력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종합상사인 A사는 IMF직전까지 7명의 오일트레이더를 육성시켜 왔으나 최근 절반가량의 인력을 일반 수출업무 분야로 전환시켰다. 오일트레이더는 원유판매 또는 원유가공품 판매를 전담하는 전문 인력으로 원유의 시추에서 가공, 판매 전과정에 걸쳐 전문적인 노하우를 축적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원유의 품질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하며 전세계 원유시장의 흐름과 바이어의 특징, 장단점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다보니 통상 7~8년 가량의 숙달기간이 필요하며 1인당 10억원 가량의 교육비가 투입되기 마련이다. A사 관계자는 『해외자원 개발사업을 축소시키면서 오일트레이더로 훈련시킨 전문인력을 활용할 기회가 원천 봉쇄되고 있다』며 『급한데로 화섬원료나 합성수지, 고무 등을 취급하는 영업부서로 배치시켜 놓았지만 개개인의 노하우가 사장되고 있어 외국기업의 스카웃 손길이 닿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 지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기업간 빅딜이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전문인력에 대한 투자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 외국계 다국적기업이 국내 전문인력을 상대로 스카웃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점 등도 고급인력의 이탈을 확산시키고 있다.【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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