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뒤돌아보기 싫은 악몽같은 한해였다. 생각하면 어쩌면 이렇게 하는 일마다 꼬일까 할 정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일년이었다.㈜한국신기술사업의 최두찬(43)사장이 4년여의 연구끝에 초박형 무선호출기를 개발한 것은 지난해 11월. 이중으로 구성돼 있던 삐삐 내부의 회로를 하나로 줄이고 부품수를 간소화해 소형칩안에 삽입함으로써 지갑안에 쏙 집어넣을 수 있는 두께 0.69㎝, 부피 12.8㎠의 초박형 삐삐를 국내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가장 얇다고 하는 미국·일본의 카드타입 제품보다 크기는 40%정도 작은 반면, 비용은 절반에도 못미치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은 충분했다. 올초 양산에 돌입, 본격적인 해외시장공략에 나선다는 부푼 꿈에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환호성도 잠시뿐. 올들어 모든것이 달라졌다. 생산자금 20억원을 지원해 주기로 했던 한국개발리스가 2월에 접어들자 「없었던 일로 하자」는 통보를 해왔다. 담당과장과 이사가 「자금지원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을 했고 반은 지분인수, 반은 융자로 한다는 조건으로 최종조율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崔사장의 충격은 더욱 컸다. 알아보니 자신과 상담을 했던 담당자와 이사는 이미 명예퇴직을 당한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생각하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초박형 삐삐를 생산하기 위해 투자한 4년이라는 시간도 아까웠지만 그보다 이것을 개발하기 위해 위해 밤잠 못자고 연구에만 매달려온 종업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崔사장은 다시 정부와 관계금융기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안되는구나」라는 허탈감 뿐이었다. 이유는 한가지. 4년간 개발에만 몰두해 매출실적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금융기관을 찾아가면 『매출실적이 있느냐. 기술만으로는 지원을 해줄 수 없다』며 한마디로 거절하기 일쑤였다.
국내에서 자금조달이 어렵다면 해외시장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에 최근 중국과 합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기술개발만 한국측서 담당하기 때문에 현지생산에 대한 리스크도 없고 지분도 20%이상을 신기술에서 갖는다는 호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역시 필요자금을 조달할 길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그동안 사무실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벌였던 수입사업도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영향으로 비용부담이 커져 더이상 유지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렸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 최근에는 이회사의 기술력에 대한 소문을 듣고 투자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 아직 이렇다할 실적을 보인 것은 없지만 이러한 움직임 자체만으로 崔사장은 요즘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특히 이달들어서는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찾아와 회사와 보유기술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실사를 담당한 실무자가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린 상태여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최종결정은 내년 2월께나 나올 예정이다.
격려도 잇따르고 있다. 불과 이삼일전에는 중국에 진출한 한업체로부터 만약 중국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힘 닿는데까지 도와주겠다며 꼭 연락하라는 전화를 받기도했다.
『다행히 최근들어 투자상담이 계속되고 있어 희망이 보입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초박형 무선호출기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해외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최고의 위치를 거머쥐겠습니다』
崔사장이 샘플을 만지며 한 말속에서 반드시 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송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