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경제 위해서라도 공교육 살려야

교육과정 개편은 역주행 정책… 과학·사회 과외만 기승 부릴 것

자유학기제도 정부 계획 과욕

'백년대계' 일관성 유지하고 학습 향상·인격 함양 교육 필요


6~7년쯤 전인가 중국 베이징의 한 영국계 국제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한국인 학생이 복도에서 1회용 라이터를 켰다가 퇴학당해 학부모는 물론 교민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장난이었을 뿐이라는 학생의 항변에도 너무 가혹하지 않으냐는 학부모의 읍소에도 학교는 꿈쩍하지 않았다. 라이터를 학교에 가져온 것 자체가 대형 방화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므로 학칙에 따라 퇴학시킬 수밖에 없다는 학교의 입장은 확고부동했다.

당시 이 국제학교의 처사는 지금 생각해도 지나친 감이 있다. 다만 학교가 극도의 무기력에 빠진 우리 현실로 봐서는 부러운 면도 있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곳이 학교이지만 우리는 지금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에 여념 없는 학생, 학교와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로 대하는 학부모가 늘어나면서 교육의 중심이어야 할 학교가 되레 사교육의 보조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속히 제자리를 잡고 공교육이 되살아나도록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문·이과 통합형 교육을 주요내용으로 최근 발표된 '2015년 교육과정 개편'은 되레 역주행이다. 고1 때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모든 학생들이 배우도록 하겠다지만 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나 그 수업을 듣는 학생이나 부담이 가중될 공산이 크다. 결국 학생의 교사에 대한 신뢰는 더욱 실추되고 과학·사회 과외만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문과는 과학과목을, 이과는 사회과목을 배우지 않는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훌륭한 취지는 실종된 채 사교육 시장만 배불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자유학기제도 정책 목표가 퇴색할 기미다.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 없이 학생의 진로 찾기를 돕고 사교육도 줄이겠다는 것이 당초 취지였으나 막상 시행되고 보니 시험 없는 학기를 틈탄 과외가 성행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자유학기제의 원조 격인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가 정착되기까지 30년이 필요했다. 2016년에 이 제도를 전 중학교로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자체가 과욕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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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지 못한 것도 과욕 탓이었다. 준비도 없이 서두르다 보니 성적 위주의 입시풍토를 바꾸겠다는 입학사정관제의 장점은 빛바래고 스펙 경쟁과 사교육 과열만 조장한 꼴이 됐다. 자유학기제만큼은 성공의 길을 걷길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정권 교체 때마다 교육제도를 손질하는 악습에서 벗어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994년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만 해도 20년간 16번이나 뜯어고쳤지만 조금의 상황 개선도 없이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만 가중시켰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요체는 학생의 학습능력 향상과 인격 함양에 있다. 교사의 지위와 역할이 되살아나야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고서 '여씨춘추'에서도 "예로부터 성인이라면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未有不尊師者也)"고 했다. 망국적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학생은 배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의 중심이 굳건히 잡혀야 한다.

더구나 공교육 회복은 경제 살리기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한 해 사교육비로 추정되는 20조~40조원의 일정 부분만 줄여도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사교육업은 내수경기 유발 효과가 내수업종 평균치보다 20%나 낮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평가다. 축소된 사교육업을 다른 데로 돌려도 내수부양 효과가 한층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역시 교육은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이자 우리가 당면한 경제 문제임에 틀림없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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