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철'없는 미세먼지


요즘 날씨는 철이 없다. 대관령에 23년 만에 5월의 눈이 내리더니 제주 지역은 관측사상 처음으로 5월 열대야를 기록했다. 한낮 수은주는 30도를 넘어서 때 이른 땡볕 더위가 기승이다. 철없기는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여름을 눈앞에 둔 5월 말 이례적으로 먼지 낀 뿌연 하늘이 나흘이나 지속됐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60㎍/㎥를 넘어선 채로 2시간 지속되자 '초미세먼지 예비주의보'가 발령됐고 시는 노약자와 어린이의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찌는 더위 속 미세먼지 마스크를 낀 생경한 모습도 이제는 익숙하다.


한반도 전역이 연일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으면서 시민들의 건강관리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미세먼지 예보제를 시행한 데 이어 당초 내년부터 도입 예정이던 초미세먼지 예보제를 5월 말부터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예보시스템 강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기오염을 선택적으로 피할 수 없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는 미세먼지 예보보다 배출원 관리가 더욱 절실하다. '중국발 스모그'라는 용어에 가려져 있지만 여전히 미세먼지의 절반 이상은 국내에서 배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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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경우 자동차가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이다. 특히 경유 차량의 매연과 타이어 분진이 끊이지 않는 도로변은 미세먼지와 발암물질의 온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디젤 엔진 배기가스를 석면·비소·다이옥신 등과 같은 '1등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유 자동차가 내뿜는 입자상 물질인 미세먼지는 폐와 기도를 자극해 폐렴 등 호흡기 질환과 심지어 폐암을 유발한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수도권에서만 미세먼지로 인해 연간 조기사망 약 2만명, 폐질환 발생자는 약 80만명에 달하며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12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버스 연료를 천연가스로 교체하고 노후 경유차에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하거나 저공해 LPG엔진으로 개조하는 등 노력으로 수도권 대기질 오염도는 상당히 개선됐다. 그러나 미세먼지 고농도 사례가 빈번히 재발하고 경유 차량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간의 방법으로는 미세먼지 배출 억제에 한계가 있다. 이제는 당국의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대기오염 배출원을 전면 재점검하고 시민들이 취할 단계적 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 불편이나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 때문에 꺼려 하던 차량 2부제나 공해차량제한지역 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 지난 3월 중순 프랑스 파리는 스모그 발생이 5일간 계속되자 전격적으로 차량 2부제를 실시했다. 당시 파리의 대기오염도가 지난 2월 말 서울 스모그 주의보 때보다 낮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출가스 규제와 차량운행 제한은 관련 업계의 이해가 걸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중요한 정책 목표는 없다. 폐암의 원인이 되는 담배는 개인의 노력으로 끊을 수 있지만 대기 중 발암물질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건강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대기오염 관리와 지속 가능한 자동차 환경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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