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26일] 통화내역조회?

회사가 당신에게 “통화내역 조회를 위해 동의서를 내라”고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 또는 회사 기밀 누설 때문이 아니다. 사장에게 불리한 내용을 외부에 알린 직원을 색출하기 위해서다. 통화 사실 자체만으로는 통화 내용까지 알 수 없다. 결국 외부와 접촉해 딴소리(?)를 하는 직원들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한 엄포용이다. 손바닥만한 중소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국내 은행의 얘기다. 한 시중은행장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기자에게 말한 취재원을 찾겠다며 ‘통화내역’을 요구했다. 직원들은 ‘사생활 침해’라며 반발했지만 ‘더럽더라도 이번 한번만은 참는다’며 동의서를 제출했다. 그래서 공중전화와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이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위원장도 자신의 입과 귀를 막았다. 직원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행장과 임원들에게 전해줘야 하는 노조의 임무를 포기한 것이다. 노조위원장은 “위원장이 바뀐 만큼 행장을 반대하던 직원들의 생각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은행 일에 대한) 노조의 공식입장은 없다. 더 이상 통화할 일 없다”며 아예 빗장을 잠근 채 외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은행장은 직원들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막고 노조는 노조원과 교감하는 걸 포기했다. 손바닥으로 직원들의 입과 귀를 막은 듯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입과 귀를 막는 꼴이 됐다. 직원들은 내부 문제를 외부에서 풀어주기를 기대해야 하는 딱한 상황이다. “사외이사들은 3년에 딱 한번만 일하면 된다”고 말한다. 인사권을 행사할 때다. 그들의 귀와 마음은 열려 있고 판단과 선택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실낱 같은 희망이다. 노조위원장이 행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은행의 미래를 걱정하는 직원들의 눈을 쳐다볼 수 없다. 은행장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며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다고 자신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직원들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면 무엇을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였는지 의심하게 된다. 은행장이 관심을 가질 건 ‘통화내역’이 아니라 직원들의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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