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나의 단풍-홍병의 시슬리코리아 사장


가을이 또 한 번 지나간다. 서울에 첫눈도 내렸으니 이미 겨울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쉽게 이번 가을을 떠나보내기가 아쉽다. 나이 때문인지 올해는 유독 가을이 가는 것이 아쉽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이 떨어지는 모습도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가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풍이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단풍을 봤지만 우리나라의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 사철나무 몇몇을 제외하고 갈참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상수리나무·떡갈나무 등 우리 산야를 덮고 있는 대부분의 나무가 가을이면 저마다 다르게 각자 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설악산에서 시작되는 단풍은 날씨가 추워질수록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남한산성에서 내장산을 통해 백양사를 거쳐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까지 가을빛이 번지고 나면 온 나라는 단풍으로 흠뻑 물든다.


매년 가을 산행 때 동행하는 이는 다르지만, 단풍을 보고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할 따름이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평생 공들여 쌓은 많은 지식도 명예도 재물도 자연 앞에 서면 하나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인데, 어느 때고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자연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관련기사



요즘 우리는 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것 같아 아쉽다. 나부터도 꾸미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살고 있다. 사람들은 도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욕망과 과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지만 자연은 있는 그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보다 좋고, 소박한 것이 꾸미는 것보다 아름답다. 더욱이 나무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일조한다. 잎에 아름다운 물이 든다는 것은 찬 기운에 엽록소가 파괴되는 현상으로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붉고 아름다운 자태와 자연의 자양분으로 새로 태어나는 셈이다.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필자는 여름 내 보관해뒀던 자전거를 꺼내 타고 밖으로 나갔다. 가을 풍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한 번 깨달음을 얻는다. 자연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신비로운 과학의 법칙을 알고 보지 않아도 자체로도 아름답고 경이롭다. 꽃피는 봄을 지나 짙은 녹음을 자랑하다 끝내 단풍으로 화려한 불꽃을 태우고 사라지는 자연의 법칙은 우리 인생과 참 비슷하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모든 걸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무더운 세월을 지나왔다는 뜻일 것이다. 겨울로 떨어져 나가는 단풍 하나에도 겸허히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연의 온갖 신비와 마법이 담겨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환경에 순응하는 자연의 법칙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그 아름다운 인생의 단풍을 준비하기 위해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일까 문득 자문해본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아름다운 단풍을 위해 꾸밈없이, 위선 없이 하루를 맞이해야겠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