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실적위주의 수익경영의 고삐를 바짝 죄면서 영업이나 마케팅을 잘 아는 인물이 대표이사로 등용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그동안 기획·재무·엔지니어 출신이 주로 대표이사로 기용된 경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는 수익경영에 직결되는 판매 성과를 영업과 마케팅이 좌우한다는 인식이 한층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아직 숫적인 비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수익경영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인사패턴의 징후로 분석돼 주목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팔기위해 상품을 만든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면서 영업·마케팅맨이 대표이사로 올라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무한경쟁시대에 걸맞는 이들의 공격적 성향도 크게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영업이나 마케팅출신이 대거 포진한 대표적인 분야는 자동차업계.
정몽구회장 체제로 완전히 탈바꿈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경영진은 내로라하는 영업통으로 채워졌다. 현대차와 기아차 사장에 각각 오른 노관호사장과 김수중사장은 영업일선에서 발군의 역량을 발휘해 오늘날 현대차의 판매철학을 일궈낸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盧사장은 지난 96년 인천제철 사장을 맡기 전까지 30년 이상 줄곧 영업일선에서 뛴 경력을 갖고 있는 배테랑이다. 金사장도 국내영업본부 승용담당 상무, 국내영업본부장·총괄사장 등 영업을 책임지는 주요 자리를 두루 거쳤다.
정일상 대우자동차판매 사장도 알아주는 영업통. 鄭사장은 여의도영업소 소장 시절 전국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탁월한 영업력을 발휘해왔다. 이를 계기로 김우중회장의 눈에 들어 상무까지 오르다 통신으로 잠깐 자리를 옮긴 뒤 다시 대우자판의 총책임자로 등용됐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의 신임 대표이사 중 배종렬제일기획 사장, 배정충생명 부사장, 이수창(李水彰)화재 부사장, 박영구코닝 부사장 등이 영업을 잘아는 인물로 꼽힌다. 裵사장은 11년의 물산경력과 반도체 영업본부장 등 영업·마케팅 경력이 주류를 이룬다. 또 裵부사장은 대부분을 현장에서 보내면서 보험업계의 영업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李부사장과 朴부사장도 제일제당의 영업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평이다.
LG그룹의 경우 송재인 정밀 사장, 이은준 LG히다찌 사장, 유수남 백화점사장, 이영섭 극동도시가스 사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宋사장은 정보통신의 영업부에서 10년을 몸담았고 李사장은 전자 마케팅팀(85~92년), 한국영업을 거친 마케팅통이다. 柳사장과 李극동사장은 각각 화학과 정유의 영업부에서 6년이상의 경력을 쌓았다.
SK그룹은 장치산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탓에 영업이나 마케팅통의 대표이사는 드문 편이다. 텔레콤에서 3년동안 마케팅 총괄 부문장으로 일한 김수필 옥시케미칼 사장이 유일하다.
배영호 코오롱유화 겸 제약사장도 영업맨으로 분류된다. 裵사장은 ㈜코오롱의 원사·원단사업본부장을 역임하면서 매출 증대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 한 전문가는 『70~80년대에 기획 및 재무, 90년대 엔지니어 출신이 경영진에 대거 등용된 것 처럼 앞으로는 성과위주경영 추세에 따라 영업 및 마케팅통이 부상할 공산이 크다』며 『영업통들의 등용이 점차 늘어나는 게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김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