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유우성 사건의 이면

임종건 언론인


간첩사건인지, 간첩증거조작 사건인지 헷갈리게 하는 유우성 사건의 이면은 탈북자들의 고향 송금이다. 우리에게 1960년대 이후 서독에 파견된 광부 및 간호원과 베트남 파병군인을 비롯, 1970년대 중동근로자들의 국내송금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자못 눈물겨운 이야기다.

당시 이들 해외 근로자들이 피땀 흘려 벌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조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요, 문전옥답과 내 집을 장만하게 하고 자녀와 형제자매들의 학비가 됐다. 송금은 자발적이었고 정부는 송금액에 우대환율·우대금리를 적용하도록 배려했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3만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 시절 우리 근로자들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애절한 탈북자들의 가족애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유우성씨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화교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는 중국에 사는 화교 친척과 북한의 부모를 이용해 1,600여회에 걸쳐 남한 내 탈북자들이 맡긴 23억원을 북한의 가족들에게 배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는 이 변칙적인 외화거래에 30%대의 높은 수수료를 물려 수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리대금 수준의 높은 수수료는 그 같은 업무의 위험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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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탈북자 입장에선 가족들에게 얼마라도 돈을 전할 수만 있다면 30%의 수수료는 아깝지 않았을 것이고 그 돈이 얼마나 어렵게 번 돈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유우성 없이도 송금할 방법은 없을까. 북한과의 금융거래는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 우리 정부의 5·24조치 외에, 탈북자들이 북한당국에는 범죄자라는 점에서 많은 장애가 있다. 다행히 우리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의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 미약하나마 거래 창구를 유지하고 있다. 또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외화라는 점,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인도적 송금이라는 점에서 북한과 협상의 여지는 있다. 탈북자 입장에서도 송금액이 제대로 가족에게 전달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개성공단 근로자들처럼 애국헌금 명목의 수수료를 좀 내더라도 그 창구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송금 방법이 나온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는다. 북한 체제의 평등주의 문제다. 지금 북한에서 가장 부러움을 사는 혈통은 김일성의 '백두혈통'이 아니라 남한에 탈북자 가족을 둔 '한라혈통'이라 한다. 북한의 탈북자 가족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윤택하게 산다는 것은 빈부차를 조장해 체제를 붕괴시키는 위험 요소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궁극적으로 '한라혈통'을 늘려 잘사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동안 북한 당국이 주민의 탈북을 막은 것은 북한 내부 정보의 유출과 외부 정보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두 목표는 북한 당국으로서도 지켜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3만명의 탈북자들이 그 같은 북한 정보의 유통에 전령(傳令) 역할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할 일은 탈북 주민의 등 뒤에다 총을 쏠 게 아니라 주민들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과거 남한의 해외파견 근로자들 이상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 송금해서 낙후한 북한 경제를 부흥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것보다 더 확실하고 큰 규모의 외화벌이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장경제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은 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고 믿을 수 있는 도움이다. 남한에는 외국의 더 큰 자본과 기술을 주선해줄 능력도 있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을 노린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했는데, 흡수통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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