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軍隊)가 변하고 있다. 고달픈 훈련과 노역으로 얼룩졌던 거대한 ‘청춘 수용소’는 사라지고 학습과 자기계발을 통해 제대 이후를 대비하는 ‘군대(軍大)’로 탈바꿈하고 있다. 더 이상 군복무기간 24개월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경기도 양주에 있는 육군 26사단(불무리 부대) 통신대대. 콘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만든 10평 남짓의 학습실에는 20여명의 병사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어학을 공부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어학용 컨텐츠로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 삼성경제연구소가 개발한 ‘M-KISS(www.mkiss.or.kr)’가 주류를 이뤘다. 같은 시각 또 다른 방에서는 멀리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 유학생 출신인 한 병사가 7~8명의 동료들을 앉혀놓고 비디오 화면을 보며 영어 발음 지도를 하고 있었다. 계급을 떠나 비번이나 자율활동 시간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그에게 영어를 배운다. 전혀 바탕(?)이 없는 병사라도 1년여만 배우면 토익점수 500점은 거뜬하다고 한다. 서울 S대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고모 일병(23)은 “토ㆍ일요일 오전과 월ㆍ수ㆍ금 오후 7~9시 등 일 주일에 4~5차례 영어 회화를 공부한다”며 “이 시간에는 전투체육 등 집체 활동이나 고참들로부터 개인적인 지시가 일체 금지돼 학습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부대 전체를 ‘그린 존(Green Zone: 구타ㆍ가혹행위를 금한 안전지대란 뜻)’으로 지정한 이 부대는 ‘인적자원개발’을 통해 군 병영문화의 일대 혁신을 꾀하고 있다. 영어ㆍ중국어 등 어학과 취미, 컴퓨터 등 관심분야별로 동아리를 만들어 자격 취득이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부대원의 30%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이 활동이후 장병들 사이에 사회와 격리됐다거나 복무기간이 아깝다거나 하는 의식이 급속히 사라지고 부대내 폭력사건(55->28건)이나 징계입창(33->12건) 건수도 절반이하로 뚝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3개사단 10개 중대에 시범실시한 ‘군 인적자원개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는 국방부와 연계해 군대 안에서 대학 학점(1년 6학점)을 직접 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아울러 트럭, 중장비, 항공정비, 응급처치 등 군에서 익힌 각종 기예의 학점인정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군대서 배운 기술이나 기능이 더 이상 사장되지 않고 사회에 복귀해서도 제대로 인정받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김경회 인적자원정책국장은 “현재 전경련, 군인공제회 등과 함께 전 군에 1중대당 16대의 PC를 보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세계 제일의 고학력 집단(전문대이상 85%)인 우리 군이 지식 전사화하면 국가 인적자원개발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