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5월 6일] '부끄러운' 어린이날

[데스크 칼럼/5월 6일] '부끄러운' 어린이날 양정록(뉴미디어부장) jryang@sed.co.kr 범람하는 인터넷 음란물로부터 무엇보다도 우리 어린이들을 지켜내는 게 시급하다. 음란물이 어린이에게 끼치는 해악은 각종 모방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어린이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그 심각성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옛 국가청소년위원회 실태조사에서 청소년이 유해매체를 처음 이용한 시기가 초등학교 4~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라는 응답이 많았다는 점과 또 다른 기관에서 3~5세 유아의 절반가량, 초등학생의 98%가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조사결과를 종합해보면 이번 사건은 충분히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 간에 파일을 주고받는 P2P 사이트와 개방형 웹하드 사이트는 어린이들이 음란물에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P2P의 경우 유사어를 검색하면 음란물을 검색할 수 있고 개방형 웹하드는 개별 사용자의 클럽들에 음란물이 섞여 있어 매번 검색할 필요도, 성인 인증을 받을 필요도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정보가 학교와 인터넷 메신저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대량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의 희망인 우리 어린이들이 음란물의 바다에 흠뻑 빠져 있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정례회동을 하면서 어린이날을 기해 ‘어린이 지키기 원년’을 선포했다. 정부도 이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성폭력 예방을 위한 배움터 지킴이(스쿨 폴리스) 배치, 유치원과 초등ㆍ중학교, 학교 주변에 1,500여대 폐쇄회로(CC)TV 추가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종합대책을 국회 교육위원회에 보고했다. 종합대책 중 학부모에게 PC용 음란물 퇴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눈에 띄지만 학부모에게 관리를 떠넘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도 1차적 책임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PC에 익숙하지 않은데 음란물 퇴치 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가정에 프로그램을 설치해주는 방식도 한 번쯤 검토해볼 수 있다. 나머지 대책의 상당 부분도 이미 시행 중인 것을 나열한 수준에 그친 만큼 정부의 학교 성폭력 대책은 한마디로 ‘무대책’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땜질 수준의 대책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 게다가 가정에 들어오는 케이블 TV도 이번 대구 성폭력 사건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성인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프로그램이 우리 안방에 아무런 제어도 없이 찾아드니 우리 어린이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인터넷과 케이블 TV 음란물에 대한 심의 및 규제를 강화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합해 공룡부서로 출발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핵심 요직은 공석이고 지그재그식 인사 등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심지어 방통위 직원들 사이에서는 ‘방통위는 인사 신기록 제조기’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돌 정도다. 현 상황에서는 각 가정에서 인터넷 예절교육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겠다. 먼저 아이들의 사이버 모방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이 필수다. 기술로서의 인터넷이 아닌 생활 ‘문화’로서의 인터넷으로 자리 매김해야 한다. 사이버 모방범죄 관련 미디어 교육을 강화시켜 사이버상 범죄도 현실상의 범죄가 됨을 어린이에게 분명히 인식시켜줘야 한다. 특히 부모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은 잘 쓰면 보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수학ㆍ영어까지 공부하면서도 인터넷은 가볍게 여기는 게 우리의 현실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컴퓨터를 가족 공동의 장소로 내놓고 온 가족이 함께 이용해야 한다. 감시를 하라는 게 아니다. 건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먼저 건전하고 유익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도 자연히 따르게 돼 있다. 방통위도 빨리 제자리를 찾아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민관(民官)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번 어린이날을 참으로 부끄럽게 여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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