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의 부동자금은 400조원에 이를 정도로 돈이 넘쳐 나고 있지만 기업들은 경기부진에 따른 매출감소와 수익감소로 자금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회사채발행 마저 끊겨 사채(私債)시장에서도 외면당하고 있고, 그동안 현금확보에 주력해 온 대기업들도 보유잔고가 줄어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은행의 단기자금지표인 당좌대출과 회전대출의 한도소진율이 올들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28일 한국은행 및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이 은행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일정한도를 정해 놓고 언제든지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당좌대월 한도소진율은 4월말 14.2%로 작년말의 10.0%에 비해 불과 넉달새 4.2%포인트나 뛰었다. 당좌대월 소진율은 지난 1월 말 10.9%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해 2월말 12.0%, 3월말 12.6% 등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급전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은행과 통장거래를 통해 한도를 정해 놓고 일정기간 단위로 돈을 빌리는 회전대출 한도 소진율 역시 은행별로 적게는 30%에서 최고 50%가 넘었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주요 은행들의 회전대출 한도소진율은 20~30%대에 그쳤었다. 당좌대출과 회전대출의 한도소진율이 높다는 것은 급하게 돈을 끌어다 쓰는 기업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경기침체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 직접적인 자금조달 수단이 막히자 긴급운영자금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에서 돈을 쓰라고 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우량기업들 조차 금리에 관계없이 대출을 요청하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또 다른 은행관계자도 “경기침체로 기업부도가 늘어나자 은행들이 모두 기업들에 대한 리스크관리를 강화하고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하자 신용과 담보력이 약한 기업들의 자금난이 점차 위험수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