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변호사 고유 직역 보호에 앞장"

"변호사 고유 직역 보호에 앞장"<br>멘토링제·창업지원센터 도입해 ??은 변호사들에 실질적인 도움<br>'긴급조치' 관련 판사실명 공개 사례 찾아보며 위헌 여부 검토


"법조비리 등으로 인해 추락한 변호사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변리사, 세무사 등 유사 직역이 변호사 직역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적극 대처하겠습니다” 사실상 차기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선출된 이진강 변호사(사진· 64)는 변호사 고유의 직역 보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 그는 또 “매년 수백명씩 쏟아져 나오는 젊은 변호사들을 위해 멘토링제도, 창업지원센터 등을 도입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변협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서울변호사회 총회에서 대한변협 회장 추천 후보로 확정됐다. 대한변협 회장선거는 이달 26일 정기총회에서 치러진다. 그러나 전국 변호사의 60~70%를 차지하는 서울변호사회의 추천후보가 대한변협 회장으로 당선되는 게 확실시 돼 이 변호사가 사실상 차기 대한변협의 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진강 호(號)는 험난한 여정이 예정돼 있다. 우선 국회에 계류중인 로스쿨 법안을 비롯해 로비스트법 통과 여부, 법률시장 개방 등 급변하는 변호사 시장이라는 ‘격랑’ 속에서 선장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적 성향이라고 평가받는 이 후보자가 당선됨으로써 앞으로 변협은 직역단체로서 목소리를 보다 뚜렷이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 후보자는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사법개혁에 반대한다’는 변호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는 것을 안다”며 “그러나 법률 서비스는 한번 잘못 제공되면 그 피해를 되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법률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는 게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민변 등 젊은 변호사들의 지지를 받던 임동진 변호사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선의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오히려 내가 젊은 변호사들의 지지를 의외로 많이 얻은 게 압승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변호사들을 위한 멘토링제도, 프로그램 등을 공약을 제시했다. 또 중견 변호사들은 나의 서울변호사회 회장 시절 활동에 대해 좋게 평가해준 것 같다. -보수적 성향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보수냐 진보냐를 놓고 다투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된다. 보혁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로스쿨, 법률시장 개방 등 각종 변호사업계 현안에 대해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추진력 있게 실천할 것이다. -젊은 변호사들로부터는 어떻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나 ▲ 선거운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젊은 변호사들을 많이 만났다. 변협이 원로들만의 단체가 아닌 젊은 변호사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단체로 만들겠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젊은 변호사와 원로변호사를 1:1로 연결시켜 주는 멘토링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또 전문분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는 미국의 ‘영 로이어스 디비전’(Young Lawyers Division)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YLD는 미국 변호사 협회 산하 조직으로 만 36세 미만 혹은 경력 5년 미만의 변호사들이 가입돼 있는 단체다. 젊은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꾸려가는 단체로 구직정보, 멘토링, 소송수행요령 제공, 공익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로비스트법, 변리사 등 타 직역의 소송대리권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 직역을 빼앗길까 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자격 있는 법률가들이 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면 결국 사회적인 손실이다. -로스쿨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 현재 종전 협회의 입장을 면밀히 검토중이다. 변협회장이 되고 나서 입장을 밝히겠다. -최근 긴급조치 판결과 관련 판사 실명 공개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데. ▲ 과거사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데 일부 시행과정에서 위헌 시비가 있다고 본다. 내부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외국의 사례 등을 찾아보면서 위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진강 대한변협회장 후보는 서울 휘문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이 변호사는 시사 5회 출신으로 광주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검, 대검중수 1과장, 법무부, 성남지청장 등을 두루 거친 뒤 1994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99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돼 의정부 법조비리 문제 등으로 흔들렸던 변호사회를 이끌었다. 당시 이변호사는 종합법률센터를 열어 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 변호사들의 공익 활동을 주도함으로써 실추됐던 변호사회의 위상을 높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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