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과학기술문화사업/정책,일관성 유지 아쉽다(과학대중화를 위하여)

◎정부 주도 새계획추진 반복 맥 끊어/행정·연구·교육 등 분담풍토 조성을헐리우드의 영웅이 바뀌고 있다. 지난 80년대를 풍미했던 「람보」와 「로키」같은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근육질의 주인공은 90년대 들어 맥을 못추고 스크린에서 쫓겨나고 있다. 90년대 들어 헐리우드에서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헐리우드의 주인공은 영화의 대단원에서 거의 대부분 컴퓨터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된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더 락」(The Rock),「이레이저」(Eraser)만 하더라도 각 영화의 주인공인 톰 크루즈, 니콜라스 케이지,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목숨을 걸고(Type for life) 컴퓨터에 매달려야 했다. 우주인과 공룡을 소재로 하는 「인디펜던스 데이」와 「쥐라기 공원」에서도 주인공이 컴퓨터를 다룰 줄 몰랐다면 지구는 우주인과 공룡에 의해 쑥밭이 돼버렸을 것이다. 짐 케리와 데미 무어가 각각 주인공을 맡은 「케이블 가이」와 「스트립티즈」는 컴퓨터가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주역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이같은 헐리우드의 변화는 「슈퍼맨의 죽음」과 함께 이미 예견된 것으로, 정보고속도로 건설을 주장한 미국 정부의 행보와 일치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80년대까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컴퓨터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90년대 들어 컴퓨터는 빠지지 않는 소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한국에서 아직 소품일뿐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주역은 아니다. 구본영 전 과기처 장관은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KBS 보도국 과학부장과 관계자들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면서 색다른 부탁을 했다. 이 자리에서 구 장관은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을 강조한 뒤 시청자들의 과학기술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방송에 과학기술자들을 자주 출연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과학기술자를 배역으로, 연구실이나 실험실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제작하고 대담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 과학기술자를 자주 등장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구 장관은 보따리를 싸고 과기처를 떠났다. 구 장관은 OECD대사로 임명됐고 새 과기처 장관으로 김용진 장관이 부임했다. TV에 과학기술자를 등장시키려는 계획은 구 장관의 보따리 속에 따라 들어갔다. 과학대중화 정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금 한국과학문화재단이 구장관의 계획을 이어받았지만 아직 구 장관의 계획을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문화는 「이어가고 쌓아가는」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문화는 아직 정부가 주도하는 유치한 단계다. 그나마 과기처 장관이 바뀔 때마다 끊어진다. 지난 30년동안 18명의 장관이, 평균 1년 8개월의 수명을 살다가면서 과기처는 「기억상실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새 장관마다 발표하는 새로운 계획을 따라가고 그때까지 추진하던 옛 장관의 업무는 깡그리 잊어버리는 증상이다. 과학기술문화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경제·사회·언론·영화·예술·철학·역사의 총체적인 집합이다. 곧 과학기술의 합리적인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각 분야의 개별적인 문화의 집합이다. 굳이 거창한 과학기술문화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과기처는 나름대로 과학기술 행정문화를, 연구소는 과학기술 연구문화를, 대학은 과학기술 교육문화를 만드는 것이 정치·경제·사회 등 다른 과학기술문화를 형성하는 지름길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문화라고 무엇 하나 딱히 내세울 게 없는 현실은 과기처의 「기억상실증」과 「의지박약증」에서 기인한다. 또 과기처에 빌붙어 사는 과학기술자들의 「해바라기 근성」과 아예 실험실에 갇혀 사는 과학기술자들의 「자폐증」도 빠뜨릴 수 없다.<허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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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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