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17일] 타지마할

황제가 비탄에 잠겼다. 아내가 열네번째 아이를 낳다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기(1631년 6월17일) 때문이다. 얼마나 애통했는지 머리카락도 백발로 변해버렸다. 15세에 만나 20세에 결혼한 한 살 아래의 황후 마할, 전쟁터에도 데리고 다닐 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기리기 위해 황제는 대역사(大役事)를 일으켰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연 ‘샤 자한(세상의 지배자라는 뜻)’의 집념과 절대권력 앞에 민초의 피와 땀이 흘려졌지만 인류는 불멸의 문화 유산 ‘타지 마할(Taj Mahal)’을 얻었다. 2002년 3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인도 문화를 극찬하면서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타지 마할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라고 말했던 바로 그 건축물이다. 무덤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 시성(詩聖) 타고르가 ‘영원의 얼굴에 떨어진 눈물방울’이라고 읊은 타지 마할의 공사에는 22년의 세월이 걸렸다. 설계를 담당한 사람들은 페르시아와 베네치아ㆍ프랑스 건축가. 중앙아시아와 중국ㆍ페르시아의 전문기술 인력 2만명이 밤낮으로 매달려 1654년에야 완공할 수 있었다. 인도의 전통에 세계적인 디자인과 건축기술이 총동원된 국제적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돈도 많이 들었다. 요즘 가치로 환산한 공사비는 2,774억원. 7,949억원이 소요됐다는 추정도 있다. 황후 마할은 임종 직전 ‘재혼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며 무덤을 일년에 한번씩은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황제는 맨 뒤의 것만 지켰다. 자식들에게 잘못 대했는지 둘째 아들의 반란으로 타지 마할 완공 3년 후인 1657년부터 1666년 사망할 때까지 조그만 성에 갇혀 지내다 아내의 무덤 옆에 묻혔다. 재혼도 안 했다. 가끔 후궁들의 하렘은 기웃거렸지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