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9월 15일] '인생 이모작' 앞에서

내가 보낸 것도 아닌데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 이제는 지난 시간에 대한 애잔함과 함께 남은 시간을 계획해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쉰살을 넘고 보니 지난 시간이 잘 보인다. 잘 됐던 일들, 못됐던 일들,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운 일들, 모두들 내 몫이 돼 보인다. 앞뒤 못 가리고 남과 경쟁하던 시절, 청춘의 치기에 조금은 부끄럽기도 한 시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 느끼고 있는 '인생 이모작'의 화두가 다가 온다. 어디로, 어디쯤 갈 수 있을까. 잘 갈 수는 있을까. 가려면 나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중년의 보통 사람들이 안고 있는 우리 모두의 화두이다. 지금까지 해 온대로 열심히 가족과 사회의 보통 시민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인가. 그동안 이뤄온 부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최선인가. 대의와 명분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최선인가. 답은 어느 누구에게도 다 같지 않다. 내용이 다르고 그 뜻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무엇을 하고 어떤 길을 걷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가 '쉼표 없는 불협화음'이라는 것.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잘 안다. 그 불협화음과 불균형이 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그 대부분의 힘은 청춘과 젊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끝이 보일 것만 같은 지금 소박한 쉼과 평화를 원하지만 세상사에는 그 평화와 쉼터가 없다. 무엇을 위해 다시금 그 불협화음 속으로 청춘의 치기 같은 용기를 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앞이 길지 않기 때문에 고민도 짧아야 한다. 짧지만 깊은 고민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뜻과 의미를 찾는다. 그 뜻과 의미는 또 다른 일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하나를 이해할 때 우리는 또 다른 하나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나 아닌, 너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세상을 넓게 알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의 뜻과 의미를 알게 되면 나를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 사색의 계절인 가을이 깊어간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에서 '또 다른 하나'를 모름으로써 갈등ㆍ오해, 그리고 미움을 낳았던가. 나만 아는 우리는 완전할 수 없고 옳을 수도 없다. 결국 우리의 모든 갈등들이 내가 너를 알게 됨으로써 내 자신이 더 분명해지고 서로의 의미를 알게 될 때 불협화음을 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 이모작 시기에는 우리가 서로 다름으로써 같고, 또 같음으로써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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