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대북지원 의혹사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이 통치권차원의 결정이라면서 검찰수사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은 이 사태를 보는 김 대통령의 인식이 매우 안이하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당장 야당과의 관계는 물론, 출범 전에 의혹사건들의 해소를 바라는 차기정부와의 관계도 어렵게 되는 등 정국혼란이 예상된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종남 감사원장으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감사결과를 보고 받은 자리에서 “이 자금이 남북경협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감사원은 현대상선에 대한 감사에서 대출금 4,000억원 중 국내에서 사용된 1,760억원의 용도만 확인했을 뿐 나머지 2,240억원에 대해서는 회사측의 자료제출거부로 용도확인을 못했었다. 감사원은 지난 28일 현대상선이 뒤늦게 제출한 자료에서 2,235억원을 대북사업 용도로 사용했다고 밝힌 내용을 검토한 뒤 이날 감사를 종결 지었다.
당초 불법대출에 관련된 산업은행 관계자들을 고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가벼운 징계요청으로 그쳤고 현대상선의 관계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로써 검찰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소 정상을 벗어나는 수단이라도 동원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은 인정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통치권적인 결정임을 주장하는 것은 이 같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관계는 보다 투명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요청이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은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검찰이 수사를 한다 해서 전모를 밝히기도 어렵다. 불법사실을 확정하는데 필요한 수사 대상이 우리의 수사력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국익에 해당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사실을 공개하는 수사가 돼야 할 것이다.
야당이 국정조사, 특검제를 요구하는 것은 상투적이지만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반대하는 입장이라면 달리 도리가 없을 듯하다. 여야는 수사 내용 중 공개해야 할 국익의 범위를 어느 선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민간의 책임으로 돌리고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이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처사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단순히 민간기업의 투자행위만은 아니었다. 무모한 대북사업으로 인해 현대는 그룹해체의 운명을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기업을 부실로 내몰고, 국민경제를 주름살지게 했다면 그 책임만도 크다. 김대통령은 진상규명을 통해 투명한 대북관계를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김민열기자 my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