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대통령과 시장논리

권구찬 기자 <정치부>

2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게시판에 노무현 대통령의 일정이 예고 없이 추가됐다. 김우식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금요일 수석보좌관회의를 노 대통령이 참관한다는 내용. 곧 대변인실은 “대통령이 회의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회의 참관은 이틀 전 모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사업자의 부도로 임대주택 입주자가 집과 보증금을 날려 길바닥에 내몰리는데도 정책 당국은 뒷짐을 지고 있다는 고발이었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서 20분가량 이 프로그램을 수석ㆍ보좌관과 함께 다시 시청했다고 한다. 회의 정규 멤버가 아닌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도 청와대로 불려와 자리를 같이 했다. 참여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임대주택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마당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목도한 이 회의에서 대책을 강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사실 임대주택 피해자가 속출하는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고 불과 며칠 뒤 부도를 내는 악덕 주택사업자, 은행 창구에서의 부실한 대출심사, 부도로 집을 날리게 된 영세민의 딱한 처지들은 과거에도 수 차례 보도된 내용이다. 그래서 기금은 ‘눈먼 돈’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이런 피해가 수년째 반복되는데도 뾰족한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하는 당국의 무신경과 무책임은 질책받아 백번 마땅하다. 그렇다면 임대주택정책의 부실은 악덕 주택업자와 금융기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정책당국만의 책임인가. 문제의 본질은 시장과 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는데도 임대주택을 언제까지 얼마를 짓겠다는 정치권의 무리한 목표 설정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입주자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주택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전량 건설하도록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건설비용을 10~20년 만에 회수하는 임대주택 건설을 공공기관이 모두 짓도록 한다면 막대한 나랏돈이 투입돼야 하는데 불행히도 나라 곳간에 그만큼의 여유는 없다. 장기주택건설계획이 세워졌기에 민간의 유인책을 쓰지만 영세업체만 달라붙다 보니 부실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대 정권마다 영구임대ㆍ국민임대ㆍ공공임대 등의 이름으로 지었으나 그 누구도 집값 안정과 서민층의 주거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100만가구를 목표로 잡고 있다. 임대주택을 정치적 고려에 의한 복지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지, 시장논리에 맡겨놓을 것인지 분명히 선택할 때가 됐다. 경제논리와 정치적 배려가 뒤섞여 있는 한 보증금을 날리는 피해자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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