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통령의 해외순방 연기(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3월초로 예정됐던 유럽순방 계획을 무기연기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해외여행을 연기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지금의 위기적 국내상황을 감안할 때 매우 적절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지금의 국내상황은 노동법파문이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보철강 부도라는 결정타를 맞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1월중의 무역수지 적자가 37억달러로 월간규모로는 사상최대를 기록할 전망이고, 이런 상태로 가다간 올해의 경제가 파국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파업여파로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이 종업원의 월급까지 주지 못하는 허약해진 체질을 드러내는등 어느것 하나 밝은 면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판에 특별한 현안도 없는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국민들 눈에 곱게 비칠리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해외여행은 유·무형의 외교적 성과를 가져다 준다. 외국 정상과의 교분을 두터이 하는 것 자체가 국익에 보탬이 된다. 그럼에도 외국 국가원수들의 해외여행은 구체적인 현안해결을 목표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의를 다지는것 이상의 실리를 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국가원수들의 방한 행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대개국익과 직결된 현안을 갖고 우리 대통령과 담판하러 온다. 최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투자유치 설명회를 주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것은 국가원수들의 세일즈외교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여행에서 친선도모 이상의 실리를 거두는 여행을 별로 보지 못했다. 기업인들을 대거 대동하지만 대통령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들러리 인상이 짙었다. 심한 경우 우리 형편에도 어울리지 않게 선심쓰듯 지원약속이나 남발했다. 그런 「건배형」 해외여행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지라도 지금같은 나라 형편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도 극복하기 힘든 난국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대통령의 해외여행은 보다 현실감 있게 추진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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