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17일] 금융위기와 국내은행의 책임

미국 주택금융시장의 부실화가 유수한 대형 금융기관들의 부실로 이어지더니 결국에는 본격적인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고 말았다. 세계 각국의 과감한 대응조치에 따라 다소 안정되는 듯하던 국제 금융시장은 다시 혼란이 재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국내 금융시장 또한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살얼음판이다. 이 와중에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사는 대표적인 국내 은행들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했다.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에서 심심찮게 발생했으며 대부분 실물경기의 침체나 금융기관들의 경영실패에서 촉발됐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또한 미국 및 유럽 각국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부실과 이에 따른 실물경기의 침체에 대한 우려가 합쳐진 결과다. 그러나 연일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국내 금융시장의 최근 상황을 단순히 세계적 위기의 불가피한 여파로만 이해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경제성장의 둔화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국내 금융기관의 자산부실화 우려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장혼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기관, 특히 은행들의 경영행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만한 대기업여신으로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를 불러온 경험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크고 작은 국내 금융시장의 혼란이나 불안에 직ㆍ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는 무책임한 과당경쟁을 지속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경쟁은 신용카드사의 공격적 영업 전략과 상승작용해 가계신용위기로 이어졌으며 부동산담보대출의 무분별한 확대는 가계 부문의 부채급증과 부동산버블의 붕괴에 따라 부실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금융불안이 가시화된 올 상반기까지 수수료수입 확대를 위해 국내 및 해외펀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했을 뿐 아니라 예금을 원하는 고객들에게도 펀드투자를 강권하는 무모함을 보였다. 이러한 행태는 핵심예금의 이탈을 초래해 유동성 부족에 따른 자금조달비용의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의 폭락에 따라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커다란 재산손실로 고통받고 은행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정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장불안이 지속되는 것이나 금융기관 부실문제에 직면하지 않은 국가들 중 유독 우리나라만 비정상적으로 환율이 급등하는 것 또한 그동안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외화대출 및 단기외화차입을 확대해 외화 부문의 유동성 리스크가 커진 상태에서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위축으로 외화차입금의 차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급해진 은행들은 외화차입에 대한 정부의 보증과 직접적인 외화유동성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자초한 위기다. 무모한 시장점유율 경쟁은 은행이 자산의 부실화를 통하지 않고도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 전반의 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 국내 금융소비자들이 다른 나라의 금융부실로 인한 혼란의 대가를 필요 이상으로 크게 치러야 하는 상황을 가져온 주범이 곧 은행이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전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몰아넣고 있는 금융위기는 뱅커(banker)의 이미지를 무책임한 탐욕의 화신으로 변화시켜 놓았으며 뱅커가 정확성과 치밀함은 물론 예의와 도덕성까지 겸비한 대표적인 신사의 직업으로 인정받던 시절은 이제 지나가 버린 것 같다. 국내은행의 경영자들 또한 십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라는 값비싼 경험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신사의 지위를 벗어던지고 이익만을 좆는 탐욕스런 장사꾼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해볼 일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