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년 8월13일 새벽4시, 독일 남부 블렌하임. 영국ㆍ네덜란드ㆍ오스트리아 동맹군과 프랑스ㆍ독일 제후군이 맞붙었다. 전투의 배경은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1701~1714). 직계혈통이 끊긴 스페인 왕위를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대립한 이 전쟁에 영국은 사력을 다해 끼어들었다. 스페인이 프랑스 수중에 들어가면 해외진출 길이 막힐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초 전망은 프랑스의 우세. 50년 동안 패한 적이 없는 프랑스 육군이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해 빈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런던 금융시장과 시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빈을 향한 길목인 블렌하임에 투입된 프랑스 측은 병력 6만명에 대포 90문. 동맹군은 5만2,000명에 대포 66문으로 열세였지만 밤8시 종결된 전투 결과는 동맹군의 압승이었다. 프랑스군은 동맹군보다 두 배의 인적 손실을 입고 최고지휘관 탈라르 백작마저 포로로 잡혔다. 단기전으로 끝날 것 같았던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의 판세도 뒤바뀌었다.
승패를 가른 요인은 신속한 의사결정. 영국군은 현장의 판단에 따라 프랑스 영토를 가로질러 5주일간 400㎞를 행군하는 대담한 기동을 펼친 반면 프랑스군은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도 루이 14세의 승인을 기다리다 보름을 허비했다.
승전보를 안고 개선한 영국군 사령관 말보로 공작에게 앤 여왕은 토지를 하사하고 ‘궁전’을 짓도록 허락했다. 유명한 투기꾼이었던 말보로 공작부인은 영국에서 왕실이 소유하지 않은 유일한 궁전을 짓는 데 아낌없이 돈을 퍼부었다.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블렌하임 궁전’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공작가의 후손으로 블렌하임 궁전에서 태어난 윈스턴 처칠은 2차 대전을 영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8대조 할아버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