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문화산책] 우리 연극 희망이 있다

시원한 고속철에서 역에 내리는 순간 마치 사우나탕에 들어서는 것처럼 후끈 더운 기운에 숨이 탁 막히는 것 같다. 내 고향 밀양은 연일 국내 최고기온을 기록하면서 뉴스에 오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삼복더위에 연극제라니…. 내가 고향에 간 날은 올해의 최고기록인 38도를 가리키며 도시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볼 수 없이 적막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동차를 타고 밀양 연극촌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넓은 학교 운동장에는 자동차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차일을 친 마당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들, 이것저것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 곧 시작될 공연을 보기위해 긴 줄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저쪽 구석에 있는 야외무대에서는 늦은 저녁에 막을 올릴 공연 연습이 한참이고 연극촌 전체가 시끌벅적한 잔치 분위기였다. 5년 전이던가 시장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폐교 하나를 얻어 연극촌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는데 어느새 이 지방의 명소가 되고 멀리 서울에서까지 이곳에서 개최되는 연극을 보기위해 관객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본ㆍ독일ㆍ스페인 등에서 공연에 참가해 이 더위에도 신나게 공연하고 함께 어울려 토론하며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는 독일 배우들과 우리 젊은 연극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워크숍이 한창이다. 그들의 연습장면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금씩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저 열정이 사라지고 그저 편하게 조금씩 꾀부려가면서 연극을 해오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들면서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온몸이 땀에 절어 거의 무아지경으로 연습에 몰두하는 젊은 후배들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울컥 목이 메기까지 한다. ‘그래서 우리 연극은 희망이 있어. 아니 우리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약하고 자기만 아는 아이들이 아니야.’ 젊은 시절 청춘을 바쳐 몰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올해 가장 더운날 모처럼 간 고향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열정을 찾았고 가슴 두근거리는 감동을 느꼈다.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극제를 성황리에 끝낸 밀양 연극촌 관계자 여러분에게 뒤늦게 큰 박수를 보낸다. /연극인 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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