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추문화/이근영 신보 이사장(로터리)

이따금씩 들리는 음식점이 있다. 대로변의 화려하지도 않은 후미진 서울의 한 골목에 있는 작은 규모의 식당이지만 갈 때마다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유인즉 이 집만의 정갈스러운 요리의 특징때문이다. 주인이 매일 새벽시장에 나가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직접 주방에서 깔끔한 맛을 챙기는 데다 값마저 적정하다 보니 믿고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주인 혼자 북치고 장구치기는 중소기업도 매 한가지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사실상 사장 혼자서 일을 도맡다시피 한다. 판매처 개척하랴, 대출때문에 은행에 나가랴, 세금문제 해결하랴, 그야말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엄살만은 아니다. 일본에 가면 한 종류의 음식으로 대를 물려가며 장사하는 식당이 많다. 오사카만해도 4대째 초밥을 파는 가게가 여럿 있다. 한 품목이나 한 업종에서 한 우물을 파는 일은 일본의 기업문화로 자리잡은지 벌써 오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품목을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백년넘게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을 어느 지역에 가도 접할 수 있다. 칼 한자루를 만들어도 이들은 세계제일의 명품을 고집한다. 이들 나라의 탄탄한 경제력도 알고 보면 수많은 이들 「작은 거인들」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품질향상으로 고부가가치를 얻는 알찬 경영보다는 회사덩치가 커지면 성공한 기업인으로 대접받는 사회적 현상때문에 착각에 빠지는 기업인이 많다. 그러니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무리를 해서라도 빠른 시일에 외형이나 시설규모를 늘리는데 급급하게 마련이다. 제품에 대한 변변한 예비지식조차 없이 바이어나 납품처 한두군데만 믿고 대규모 공장을 세우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유지하려다 보니 중소기업주가 생산현장에 전념하기 보다는 현장밖에서 분수에 넘치는 접대나 교재에 몰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 스스로도 성공한 기업인으로 자처, 고급승용차에 몸을 담고 골프장을 찾거나 해외여행을 즐기는 빗나간 형태가 있어 우리 중소기업 사회를 좀먹고 있다. 이러한 풍조가 중소기업의 도산율을 높이는데 한몫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덩치만 컸지 속빈 강정의 빈약한 기업체질로는 살벌한 경제환경의 격랑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의 전환기를 맞아 경영환경이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세계시장을 무대로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고객의 수요가 다양화, 고급화되고 있다. 이런 경제환경에서는 규모가 큰 대기업보다는 전문성과 유연성을 구비한 작은 중소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중소기업이 보호·육성되어 우리 경제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제 현 시점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나아갈 진로는 보다 분명해졌다. 키나 키우고 몸무게만 늘리는 「골리앗 경영」이 아니라, 강하고 야무진 작은 「다윗경영」을 지향하여야 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옛말대로 작고 매서운 우리 특유의 「고추문화」로 일본과 독일의 장인정신과 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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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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