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15일] 미국자유연맹


1934년 8월15일, 미국 워싱턴. 듀폰과 모건, 유에스 스틸, GM, 스탠더드 오일 등 내로라 하는 기업이 모였다. 미국자유연맹(American Liberty League)을 결성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 존중’이라는 자유연맹의 기치에는 ‘뉴딜 정책에 스며 있는 반(反)시장적 요소의 제거’라는 목적이 깔려 있었다.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놓고 반대하는 이 모임에는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보수파까지 끼어들었다. 한때 회원 수가 12만5,000명까지 불어났던 자유연맹의 주력 사업은 교육홍보. 빈민구제와 사회보장, 최저 임금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자금을 쏟아 부었다. 1936년 대선을 앞두고는 흑색선전도 서슴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유대인 정신병자에 매독 환자, 알코올 중독자’라는 비난에서 ‘영부인이 차기 대통령직을 물려받아 나라를 통째로 소련에 넘길 것’이라는 헛소문까지 버젓이 신문에 실렸다.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인’이라고 칭송했던 예비역 해병 소장 스메들리 버틀러는 ‘파시스트의 모임인 자유연맹이 예비역 군인 50만명을 동원한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고 말해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버틀러의 폭로는 증인과 증거가 나왔음에도 보수파가 지배하는 대법원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자유연맹은 점차 일반인들의 지지를 잃었다. 자유연맹이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처신. 맞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정책자문까지 받았다. 결국 자유연맹은 1940년 해산하고 말았다. 자신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뉴딜은 공산화 정책’이라며 터무니없는 공세를 퍼붓던 상대조차 껴안았던 루스벨트는 불황 극복과 4선 성공, 2차대전 승리라는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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