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무늬만 복귀… 이번엔 고객을 볼모로

태업으로 전환하는 SC제일銀 노조<br>고객 편의 위한 절차 불구<br>펀드 등 소극적 판매 운동<br>점심시간 자리 비우기도<br>사측선 전산작업 제한 맞불


SC제일은행 노동조합의 파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귀족노조의 휴양파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 10주 만이다. 노조는 현업으로 복귀하되 태업(사보타주)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법을 지키되 펀드 등의 상품을 판매할 때 소극적으로 대하겠다는 얘기다. 점심시간에는 자리를 비운다. 노조가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행위라고는 하지만 금융회사가 상품 판매를 무기로 삼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사용자 측은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다. 노조를 달래는 것을 포기했는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최장 기간 파업'이라는 불명예에도 둔감해진 모습이다. 고객만 이래저래 골탕을 먹게 됐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제일은행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10주 만에 업무에 복귀한다. 하지만 오는 31일 하루짜리 총파업을 벌이고 이후 다시 업무에 복귀하되 사보타주 형태로 준법투쟁을 무기한 진행한다. '무늬만 복귀'다. 사보타주의 첫 번째 방법은 자사 금융 상품에 대한 소극적 판매다. 펀드나 보험상품을 판매할 때 또는 대출상담을 진행할 때 법이 정한대로 모든 절차를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것.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는 금융회사가 펀드 등을 팔 때 위험성 등을 상세하게 고지하기 때문에 최대 20~30분씩 걸리곤 한다. 그래도 고객의 동의 아래 간소화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데 이를 빠짐없이 챙기겠다는 뜻이다. 배광진 노조 홍보부장은 "약관이나 투자의향서 동의를 받을 때 처음부터 모조리 읽어주면서 동의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며 "대출을 해줄 때도 신용등급 정보 활용동의서를 꼼꼼하게 받는 등 모든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펀드에 가입하거나 대출을 받으려면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배 부장은 얘기했다. 더욱이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객이 제풀에 지쳐 떠날 수도 있다. 노조는 특히 점심시간에 한꺼번에 자리를 비우는 투쟁도 병행한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금융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것이 힘들어진 셈이다. '준법'이라는 말이 언뜻 문제될 것이 없고 좋은 미사여구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다. 업무 복귀 이후 또다시 고객편의가 볼모가 됐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태업보다는 파업이 낫다"라는 말조차 나온다. 사측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측은 사보타주에 대항해 복귀 직원의 전산작업 권한을 제한하는 등 맞불을 놓을 예정이다. 업무 정상화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역행하는 악수를 두겠다는 것이다. 제일은행과 10년 이상 거래해온 이모씨는 "은행이 고객한테 미안하다며 취한 조치는 수수료 면제, 보험모집인 창구배치 등에 불과하다"며 "사보타주가 고객불편을 심화시킬 게 뻔한데 총파업을 종결 짓기 위한 근본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 거래은행을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시점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 노사 간 최대 쟁점은 ▦개별성과급제 ▦후선 발령제 등. 개별성과급제와 관련해 사측은 추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협의하자는 반면 노조는 시행을 전제로 한 TF 구성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선 발령제도 사측은 시중은행의 평균 수준에 맞추자고 하지만 노조는 상시 구조조정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총파업 10주째지만 노사 간 갈등과 불신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며 "고객은 떠나게 마련이고 이는 노사 모두의 피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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