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던 시장에 외환당국이 다시 한번 칼을 빼들었다. 기획재정부ㆍ한국은행ㆍ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등은 21일 아침 예고 없이 주요 외국환은행에 대한 특별검사 방침을 밝혔다. 오는 26일부터 조사가 시작되는데 국내 은행 2곳과 외국계 은행 2곳이 대상이다. 이번에도 한은과 금감원이 공동으로 실시한다. 지난해 10월 외환거래의 매개체인 외국환은행에 대한 선물환포지션제도를 도입한 직후 1차 점검을 벌인 지 6개월여 만이다. 당국이 내세운 명분은 단순하다. 최근 단기외채가 너무 늘어나고 여기에 역외 투기세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숨겨진 이유는 따로 있다. 환율속도가 너무 가팔라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 배어나온다. 환율을 통해 물가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너무 떨어지는 것은 막겠다는 의도다. ◇물가 위한 환율 용인, 한계 다다랐나=정부는 그동안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막기 위해 두 가지의 거시도구를 사용했다. 일차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썼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결국 환율정책까지 동원했다. 원화강세를 용인해 수입물가를 낮추고 이를 통해 국내 소비자물가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환율절상은 거시경제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수출하락이라는 반작용이다. 달러약세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당국이 개입하지 않고는 급격하게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시장에서 1,080원 아래의 저지선으로 인정했던 1,050원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던 터였다. 물가를 잡으려다 수출까지 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침 외환당국의 책임자도 바뀌었다. 고환율자인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아래에서 정책을 펼쳤던 최종구 차관보가 외환정책의 키를 쥐었다. 마침 칼을 뽑을 수 있는 여건까지 갖춰졌다. 당국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80 붕괴 직전까지 떨어지는 등 외환시장의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 하락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선업체 수주 호조 등 실물 부문에서 파생된 달러공급이며 또 다른 하나는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역외 세력의 투기거래다. 당국이 주목하는 부분은 후자다. 원화강세(달러하락)에 베팅한 역외세력이 달러 선물을 매도하면 국내 외국환은행들은 이를 받아주는 과정에서 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 외환시장에서 달러 매도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단기외채가 증가하고 원ㆍ달러 환율은 하락압력을 받게 된다. 조선업계 호황 등 실물 부문의 호조에 따른 원ㆍ달러 환율 하락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투기세력들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환율 하락폭이 확대되고 단기외채가 급증하는 등 외환시장의 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선물환 포지션 규제 강화되나=정부는 지난해 10월 외화자금 유출입에 따른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0월 외국환은행에 대한 선물환포지션규제(국내 은행 자본금 대비 50%, 외은 지점 250%)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 의도와 달리 원ㆍ달러 환율 변동성은 줄기는커녕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과 금리인상 기조가 맞물리면서 환율 하락속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번 특별검사를 선물환 포지션 추가 축소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단기외채 증가와 원ㆍ달러 환율 하락은 조선업체 수주 증가 등 수출 호조에 따른 실물적 요인과 투기적 요인이 섞여 있다"며 "하지만 최근 외환시장이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쏠려 있어 거시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최근 환율 하락에 베팅한 역외 선물환 거래가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검사 결과가 나오는 5월 초중반부터 선물환 포지션 조정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