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소비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지난 1ㆍ4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은 5.3%를 기록했다. 지난해 2ㆍ4분기부터 뚜렷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내수 없이 수출에만 의존하는 ‘외끌이’ 성장이 1년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은 지난 1ㆍ4분기 중 29.6% 증가해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4분기 연속 감소했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 당장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뿐 아니라 중장기 성장잠재력도 갉아먹게 된다. 가뜩이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안전판’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기업들도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 유가 급등, 중국발 쇼크 등 해외변수와 정부정책의 불확실성 등이 원인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 3월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년동기에 비해 7.7%나 감소했다. 8개월 만에 증가세(0.5%)로 돌아서서 경기회복의 기대감을 높였던 지난 2월 실적이 무색할 정도였다.
돈을 쓸 곳이 없다 보니 기업들의 현금보유액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538개사(금융사 제외)의 지난 3월말 현금보유액은 23조2,87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2,139억원(5.5%) 증가했다. 특히 제조업체의 현금보유액 증가율은 7.0%로 비제조업체(2.6%)보다 훨씬 높았다.
현금보유액을 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보다 34.1% 늘어난 1조7,001억원이었다. SK㈜도 3개월 만에 90.4%나 불어난 1조6,944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지갑도 열리지 않고 있다. 때문에 백화점, 슈퍼마켓 등은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다. 지난 3월말 소매업 매출은 전년 동월보다 4.8% 감소했다. 지난해 2월(-5.6%)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14개월째 내리막길이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97년 12월부터 98년 12월까지 13개월 연속 감소세 기록을 깬 것이다.
다 줄여도 먹을 것과 교육비는 쓴다는 소비자들이었지만 불황을 모르던 교육비 지출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교육서비스업의 지난 1ㆍ4분기 실질총생산액(GDP)은 7조3,169억원으로 지난해 4ㆍ4분기(7조3,883억원)보다 1.0% 감소했다. 교육서비스업 총생산액이 전분기 대비로 감소한 것은 2000년 1ㆍ4분기(-0.6%) 이후 4년 만이다. 공교육에 대한 정부지출이 계속 늘고 있으니 결국 소비자들이 사교육비까지 줄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도 “대기업의 설비투자 활성화를 시작으로 따른 고용증가, 소득증가, 소비증가의 선순환 고리가 작동해야 한다”며 “국제유가 등 해외악재가 다시 돌출되고 내수시장까지 회복되지 않는다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5%에 못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