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 예산안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 8월 말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 재정적자 폭은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적은 편”이라며 “재정적자(적자국채 발행)를 10조원 범위 정도에서 경직되지 않게 조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당정협의를 통해 국회에 제출된 내년 예산안(일반회계 기준)은 6조8,000억원의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131조5,000억원. 나라 빚을 의식함과 동시에 연말쯤 내수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묻어나 있었다.
당정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가 안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현실화하고 수출마저 증가율이 급락하는 등 더블딥(일시 상승 후 재하강)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재정경제부도 “5%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1%포인트만큼의 부양책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한국판 뉴딜정책’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건설경기 부진이 심화되고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까지 나오면서 보다 강도 높은 부양책이 필요해졌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 연설에서 “내년 예산 심의과정에서 정부가 제출한 예산규모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이 같은 상황론에 근거한다.
문제는 예산의 확대규모와 방법.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국내에서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4.5%로, 외국기관은 3%로 보고 있는데 5% 성장률을 달성하고 건설경기를 연착륙시킬 정도로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당정이 합의한 131조5,000억원보다 수조원 규모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우선 확대규모와 관련, 예산안에 반영된 6조8,000억원의 재정적자 외에 3조원 안팎을 추가로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총 재정적자 규모는 10조원 안팎이 돼 정부의 예산안을 확정하기 전에 여당이 그렸던 그림과 거의 유사해진다.
예산확대를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적자국채 추가 발행과 내년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인데 당정 모두 전자를 선호하는 모습이다. 다만 야당인 한나라당이 감세안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타협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도 “야당이 정부의 예산안을 삭감하려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 선수를 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정이 이처럼 내년 예산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5%대의 성장률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추가된다는 3조원이라는 돈도 GDP의 0.5%포인트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건설경기가 바닥을 향하고 있고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출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정은 이를 ‘뉴딜적 종합투자’로 해결한다는 복안이다.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연기금과 민간으로부터 사회간접자본(SOC)에 7조~8조원을 유치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GDP의 1%포인트 가량으로 재정을 포함할 경우 1.5%포인트 가량의 ‘알파 성장률’을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판 뉴딜’은 당초 재정 확대분 4조5,000억원과 민자 3조원 가량을 포함해 7조~8조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나 3조원 안팎의 재정을 포함, 10조원 가량에 이르게 된다.
당정은 이와 함께 ▦고유가 장기화시 유류세 인하 검토 ▦판교 등 조기착공(내년 상반기) ▦생산직 근로자 비과세 범위 확대 등 전방위 ‘정책조합(policy mix)’을 통해 부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유가 상승세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산업생산의 지렛대 역할을 해왔던 충청 지역이 위헌결정으로 난관에 봉착하는 등 당정의 부양의지에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