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정부의 실패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해 물리적 통합을 달성하긴 쉬워도 조직문화까지 동질화하는 화학적 통합의 길은 험난하다. 연공서열이 중시되고 능력별 직급ㆍ급여체계가 정착되지 않은데다 해고도 어려운 우리 풍토에선 더욱 그렇다. 특히 확실한 오너가 없고 정부의 영향력이 커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이 취약한 국내 은행 간 합병은 오랜 기간 '한 지붕 두 가족' 현상이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1976년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합친 서울신탁은행은 화학적 결합, 정부 주도 은행 합병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두 은행이 소매금융과 신탁업무에 강점을 가져 상호보완적 성격이 강한 합병이라고 강조했었지만 뿌리 깊은 파벌 간 인적 갈등으로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인사부가 존재했었다. 외환위기 이후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으로 넘어가게 된 원인(遠因)도 '정부의 잘못된 주선'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민간자율의 은행 간 합병이 대규모 인원감축ㆍ지점폐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선진국과는 한참 다르다.

관련기사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은행 간 M&A가 봇물을 이뤘지만 통합의 길은 험난했다. 2001년 말 국민은행ㆍ주택은행ㆍ국민카드가 국민은행으로 합병했지만 '한 지붕 세 가족'체제를 유지하던 3개 노조가 통합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통합논의에 돌입한 것은 2004년 5월에서다. 하나은행도 2002년 말 서울은행을 합병한 지 3년여 만인 2006년 노조를 하나로 합쳤다. 임금ㆍ직급체계 단일화에도 시간이 걸렸다.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는 정부 주도 합병이 하나 더 있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에서도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정금공의 뿌리는 산은. 산은 민영화의 일환으로 2009년 정책금융 조직이 산은에서 떨어져 나왔다. 정금공 인력 418명 가운데 135명이 산은 출신이다. 하지만 최근 산은 노조 선거에서 "정금공 인력은 결코 정예의 산은인과 동일할 수 없다"고 주장한 후보자가 위원장에 당선됐다. 산은과 신설 조직인 정금공 간 직급 차이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정금공 직원들은 서자 취급에 입이 나왔다. 정부정책 실패의 그림자가 참으로 길고도 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