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평가 대상 기업과 '신용등급 장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17일 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들이 평가 대상 기업과 사전 등급 조율 등 뒷거래를 한 혐의를 적발하고 중징계 계획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신평사와 기업 간 검은 커넥션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은 각 신평사의 소명을 들은 뒤 오는 7월 중 해당 안건을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려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등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나온 동양그룹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말부터 이들 신평사에 대한 특별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A평가사는 B기업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강등할 계획이었지만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을 앞둔 B기업의 부탁을 받고 등급 조정을 늦춰준 것으로 드러났다. B기업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지만 ABCP에 투자한 투자자는 이후 신용등급 하락으로 손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C평가사는 신용평가 업무를 수주하기 위해 평가 대상 기업들에 높은 등급을 제안한 사실이 확인됐다. 신평사가 예상 신용등급을 알려주고 계약을 따내는 것은 자본시장법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사안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은 신평사들이 엄정한 잣대로 신용등급을 매길 수 있도록 '평가조직과 영업조직 분리'를 강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평사와 기업이 유착관계에 빠진 것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기업은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야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빌릴 수 있고 신용등급 평가 수수료가 주 수익인 신평사는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생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현상이 확산하는 것도 이 같은 연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 중 투자적격등급(BBB) 이상을 받은 업체 비중은 90.2%에 달했다. 지난 2003년 72.8%에 비해 17.9%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신평사와 기업 간 검은 커넥션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금감원 검사 결과를 토대로 신평사에 소송 등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실 평가로 확인된 기업의 등급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신평사가 신용등급을 올려준 탓에 실제보다 비싼 가격에 채권을 매입한 셈"이라며 "금감원 제재가 확정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