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국식품산업협회 4층 회의장으로 농심ㆍ롯데ㆍCJㆍ풀무원 등 식품업체 임직원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정부가 소집한 '물가안정을 위한 주요 식품업체 협의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빵ㆍ라면 같은 가공식품의 가격인상을 자제하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회의에 참석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가격을 올리더라도 원가를 반영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해달라고 전달했고 업체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품업체의 속내는 전혀 달랐다. 한 관계자는 "주력상품 가격이 지난해부터 묶여 있는데 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고 답답한 게 사실"이라며 "정부는 각종 공공요금을 앞다퉈 올리면서 민간에만 희생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민간업체들의 불만처럼 정부가 민간에는 가격동결을 압박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정권말을 틈타 '밀어내기' 공공요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22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이후 두달여 동안 정부가 인상한 굵직한 항목의 공공요금만도 7개에 달한다. 서민생활과 밀접한 전기 요금이 평균 4.0% 올랐고 도시가스 요금도 4.4% 인상됐다. 한겨울 난방에 필수적인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을 기습 인상한 것이다. 가스요금의 경우 통상 홀수달에 인상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유독 짝수달인 2월에 올라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일종의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수돗물 요금으로 연계되는 광역상수도ㆍ댐용수 요금도 각각 4.9%씩 뛰었고 대중교통 수단인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요금도 각각 5.8%, 4.3% 올랐다. 정부는 올해 택시 기본요금도 2,800원으로 일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요금을 올리면서 내세우는 원인은 한결같이 원가상승이다. 하지만 똑같이 상승 압박을 받는 민간에는 가격인상 자제를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율배반이다. 민간의 팔을 비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리어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새누리당에서까지 공식적인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물가인상을 부추기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정부 당국에 공식적으로 엄중히 경고한다"며 "물가당국이 정권교체기의 어수선한 틈을 타 물가인상에 앞장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