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외환당국의 대응에 커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총력전을 펼치며 끝까지 지켜냈던 1천원선을 쉽게 내준 것은 물론 기업들의 잇따른 개입 요구에도 묵묵부담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한 채 원화 강세(=환율 하락)를 기업 구조조정 기회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업 아우성 불구, 당국 "문제 없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주말보다 0.40원 오른 973.00원으로거래를 시작했으나, 달러 매도 증가로 이내 하락반전했고 965원선까지 밀렸다.
환율이 급락한 데는 외환당국의 역할이 컸다.
재정경제부 김성진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환율을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달러 버리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가 최대 15% 가량의 부품 납품단가 인하를 추진하는 등 대기업들도 환차손 회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정부는 대기업에 경고 신호만 보낼 뿐 `환율을 올려달라'는 산업계 요구에는 묵묵부답이다.
무역협회 등 산업계 요구를 묵살한 지는 이미 여러차례다.
◇시장 "당국 변했다..기업 대응 필요"
시장에서도 `당국이 변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환율이 세자리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지난해 3월 상반월 동안 외환보유액을 무려 46억달러나 늘리며 네자리를 고수했던 것과는 대응 방식이 확연히 틀려졌다는 설명이다.
경미한 외국환 거래법 단순 위반에 대해서는 제재를 완화키로 한 점도 유연해진외환정책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올해부터 외국환 시행령을 개정해 거래금액이 2만달러 이하또는 과오나 과실로 외환거래 신고절차 등을 이행하지 못한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 외국환거래 정지라는 기존 엄격한 처벌 대신 경고 처분만 내릴 예정이다.
이 같은 당국의 변화에는 단기적인 시장 개입보다는 장기적인 시장 체계 개편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윤덕룡 연구위원은 "외환당국이 미시적 개입으로는 해외 투기자본를 불러오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해 외화유출 촉진 등 펀더멘털 부분 개선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며 "기업도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원론에는 찬성..지나친 눈치보기 비판도
그러나 시장에서는 당국의 정책 변화 목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시장 대형화와 선진화에 맞춘 발걸음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계 중소기업 구조조정 등 기업 체질 개선을 장기적 목적 하에 일부 기업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한계 기업 살리려고 억지로 환율을 끌어 올렸다가 역외세력에게 달러 매도 기회만 제공해 결국 국가에 해를 끼친 경험을 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며 "자국 통화 약세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보다는 기업이 환율 변화에도 불구하고 목표이익을 맞추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통화절상 압력이나 무디스 등 국가신용평가사 눈치보기로 지나치게 몸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가 지난해 7월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시키며 "원화 환율의 유연성 강화도 상향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혀 무디스의 등급 평정을 앞두고 있는 정부가 섣불리 개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연구소 연구위원은 "당국 방향이 원론은 맞지만 현실과는 괴리되는 측면이있다"며 "연초 급락세 등에는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