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3부. 기업 맘껏 뛰게 하라] <2> 경제민주화 족쇄 벗겨야

시장경제 억누르는 정치… "이런 상황에 투자할 수 있겠나"<br>계열사간 정상적 거래 막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불합리<br>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준 모호한 배임죄도 논란<br>"복지 좋지만 성장부터 챙겨야"



"정치권이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입장에서는 눈치보고 알아서 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해 도전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최근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A그룹의 한 임원의 말에는 좌절감을 넘어 분노마저 서려 있다.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대기업과 대기업 총수를 겨냥한 규제 법안들을 잇달아 추진하면서 기업인의 창의성도, 도전정신도 모두 고사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국회가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를 기본적으로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하고 처벌수위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국회 상임위 차원이기는 하겠지만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지만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기업들은 정치권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기업활동에 갖은 족쇄를 채우고 기업인을 범죄자인 양 몰아세우며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일만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과정에서는 표를 의식해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경제민주화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정치권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권이 얘기하는 국민들의 행복과 복지ㆍ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라는 물적 토대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성장은 도외시한 채 행복과 복지만 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전형적 표퓰리즘=16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17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대기업 계열사 간에 부당 내부거래 의혹이 일 경우 입증책임을 기업이 지도록 한 것이다. 또 내부거래의 부당성 판단요건을 완화하고 기업 총수가 부당내부거래를 유도하거나 관여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에서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될 경우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방안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계열사 간 모든 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정하려는 것은 기업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추진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이런 법들이 통과될 경우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절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절도 혐의가 없음을 입증하라는 꼴"이라며 "가뜩이나 죄가 없음에도 범죄자로 오해 받는 것도 억울한데 죄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소명하라는 책임까지 떠안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특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자동차와 전자 등 국내 대표업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현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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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임원보수 공개 등 곳곳에 암초=앞서 국회 정무위는 9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징벌적손해배상제 적용 대상을 부당한 단가인하, 부당한 발주취소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기업들은 앞으로 법안이 시행될 경우 협력업체로부터 줄소송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국내 업체에 하청을 줘 문제가 되느니 차라리 해외 업체에 아웃소싱을 하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국회 정무위는 또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상장사 개별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재계는 이에 따른 사생활 침해와 노사갈등, 고소득 기업인에 대한 반감 확산 등을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감사원은 최근 대기업들이 총수 자녀 등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 증여를 했다며 2004년부터 2011년까지의 거래에 증여세를 소급해야 한다고 국세청에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이중과세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고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나 재검토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경제민주화 여파로 기업투자 위축 불가피=정치권은 이처럼 기업활동을 옥죄는 법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에 투자확대를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재계는 무엇보다 기업경쟁력을 훼손하는 법안들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기업의 투자여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국내 한 그룹사의 고위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기업들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활기차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라며 "하지만 사정기관까지 기업 누르기에 동참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투자를 비롯한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되는 배임죄도 기업들의 투자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배임죄 적용으로 김승연 회장의 경영공백이 장기화하며 대규모 투자가 사실상 중단된 한화그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민영 동국대 법대 교수는 "다른 기업들이 실패가 두려워 망설일 때 경영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에 뛰어들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것을 두고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다 손실을 끼친 것으로 치부해 처벌하는 것은 국가경제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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