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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에는 유독 '상업고등학교' 출신이 많다. 이들은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직장을 택했는데 개중 능력을 펼칠 곳이 은행이었다. 상고 출신인 한 전직 시중은행장은 "정말 눈물 나게 뛰었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한 마음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고 떠올렸다.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군산상고)이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광주상고) 등이 어느 누구보다 금융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이들이 굴곡진 인생을 극복하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명문 상고가 있지만 서울의 '명문'으로 꼽혀 온 곳이 바로 덕수상고다. 덕수상고 출신에는 관가로 진출해 장차관 자리에 오른 인물도 적지 않지만 금융가의 고위 자리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특히 지난해 말 정기인사 때부터 덕수상고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금융회사의 부행장을 비롯한 핵심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금융권 덕수상고 인맥'이 재조명되고 있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정기인사에서 서형근 경동지역본부장을 신임 부행장으로 선임했다. 서 부행장은 덕수상고(66회)를 졸업하고 지난 1978년 기업은행에 입행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총무부장·성수동지점장·경동지역본부장 등을 거쳐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국민·산업·농협은행 등 은행에서도 덕수상고 인재들이 선임 내지 승진했다.
국민은행은 덕수상고(61회) 출신 김기헌 삼성SDS 금융사업부 전문위원을 정보기술(IT)그룹 부행장으로, 산업은행도 같은 학교(66회) 출신 임해진 산업은행 재무회계부장을 성장금융2부문장(집행부행장)으로 각각 선임했다.
아울러 덕수상고 64회 졸업생 윤동기 농협은행 충남영업본부장은 지난해 말 인사 때 신임 농협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비단 승진자뿐 아니라 전·현직 임원들도 금융권 곳곳에 퍼져 있다.
김학현 농협손해보험 사장(62회), 김인환 하나생명 사장(66회), 이승록 우리은행 상무(66회), 최병화 신한은행 부행장(69회) 등이 덕수상고 출신이다. 전직 은행원으로는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김동수 전 수출입은행장, 허창기 전 제주은행장, 김광진 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회장, 신현규 전 토마토저축은행 회장, 이광원 전 삼화상호저축은행장, 오승근 한국아이비금융 사장, 민경원 전 농협은행 부행장, 이영준 전 하나은행 부행장, 주인종 전 신한은행 부행장 등이 있다.
공직자 중 덕수상고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은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68회)이다. 덕수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26회)에 합격했다. 이후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추진단장, 녹생성장위원회 기획단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59회), 반장식 전 기획예산처 차관(61회),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63회) 등이 있다.
이 밖에 이종남 전 감사원장, 박판제 전 환경청장, 이삼걸 전 행정안전부 2차관, 허용석 전 관세청장 등도 덕수상고를 졸업했다.
덕수상고 출신 금융인들은 비정기적으로 반창회·동문회를 갖는 것으로 전해진다. 덕수상고 출신 한 임원은 "반창회는 승진자를 중심으로 같은 졸업기수가 모여 조촐하게 진행하며 동문회는 100여명이 모여 최근의 근황을 얘기한다"면서 "잘나갔던 덕수상고 선배들에 이어 후배들까지 최근 금융권 고위직에 오르면서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