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중증의 조로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프로야구 선수들도 30세만 넘기면 어김없이 노장으로 불리고 스스로도 노장티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경제개발과 고성장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사회, 특히 30대에 임원이 되고 40대에 사장이 되는 식의 초고속 승진 풍토에 익숙해 있던 기업에서 조로증후군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70대 사장, 40∼50대 부장이 전혀 낯설지 않으며 그들 대부분이 최고의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우리사회와 기업에서의 조로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낭비적인지 알 수 있다.
사실 많은 대기업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 간부 사원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 연령이나 직책상으로 한창 왕성하고 의욕적으로 활동해야 할 많은 간부 사원들이 심각한 조로증후군에 감염되어 있는 듯싶다.
심하게는 중간 간부만 돼도 일선 현장에서 발로 뛰며 일하려 하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군림하려 들고 변화와 개혁을 모색하기보다는 기존의 관습을 고집하고 경험만 내세우려 한다.
누군가 새롭게 일을 벌이는 것은 아주 질색, 온갖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워 반대하며 늘 하던 편한 일만 하려 든다.
신분상의 위험이나 불이익 가능성을 철저히 배격하는 그들은 「일 논리」로 일을 풀어가는데 무관심하다.
혹시 자신이 조직 내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평가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며 극도로 과민해 있다.
조로증후군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기업, 나아가 사회의 철저하지 못한 자본주의식 계약정신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한국적 온정주의 풍토에 때가 되면 승진하는 연공서열식 관행이 이러한 조로증후군을 키우고 조장한 것 같다.
요즘 신인사제도라 해서 연봉제 또는 파격적인 발탁인사를 시행하는 회사가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조로증 확산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다.
물론 나름대로 장단점은 있으나 연공서열식 위계에 따른 의식의 정체를 타파하고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사파괴는 더욱 위세를 떨칠 전망이다.
조로증은 자신은 물론 기업, 국가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인사제도로 조로증을 예방하는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진정한 프로정신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이 늙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책임이다. 몸관리는 열심히 하면서 왜 머리운동은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