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이안 감독의 멜로 스릴러 '색,계 (Lust, Caution)'가 현재 이 곳에서 비평가와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상영되고 있다. 홍콩의 스타 양조위(토니 륭)와 TV 배우로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탕 웨이가 주연하는 만다린어 대사의 대만 영화로 배급은 미국 유니버설의 자회사인 포커스가 맡았다. 원작은 아일린 챙의 소설로 상영시간은 157분이다. 이 영화는 1940년대 일본이 점령한 상하이를 무대로 펼쳐지는 사랑과 욕정, 암살과 음모가 있는 정통 멜로 드라마이자 스릴러로 양조위와 탕웨이의 전투를 하는 듯한 극사실적인 섹스신 때문에 미 영화 등급 판정위로 부터 NC-17등급(17세 이하 관람불가)을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에 협조하는 정보부장을 살해하기 위해 그의 정부가 된 여대생의 얘기로 말끔하게 만들어졌으나 격렬한 섹스 신에 비해 감정과 정열이 그에 이르지 못하고 위험성이 덜 느껴지는 것이 다소 흠이나 매우 재미있다. 중국 여인들이 입은 청삼이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중국과 같은 경험을 한 한국의 영화인들도 이젠 이 정도의 영화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1942년 상하이. 일본에 동조하는 식민 중국 정부의 정보부장 이(양조위)의 아내(조운 첸)가 친구들과 마작판을 벌이고 있는 자리에 사업가의 젊은 부인 막여사(탕 웨이)도 참석한다. 이 때 이가 귀가하는데 이와 막이 나누는 시선에서 둘이 구면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막여사는 쿠앙 유민에게 암호 전화를 걸어 "작전개시 가능"이라고 말한다. 시간대는 4년 전 홍콩으로 돌아간다. 막여사의 실명은 왕 지아지로 대학 1년생. 왕은 학교 연극단원들로 구성된 대일 저항단체의 리더인 쿠앙에게 포섭돼 임무를 부여 받는다. 홍콩에 정보부원을 모집하러 온 이의 아내의 신임을 산 뒤 이의 동태를 파악하고 정보를 빼내는 것. 저항단체의 궁극적 목적은 이의 암살이나 작전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어 1941년. 상하이로 거처를 옮긴 왕은 다시 쿠앙에게 포섭돼 막여사로 변신하고 이의 아내의 마작 친구로 이의 집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그리고 홍콩에 이어 다시 만난 이와 막여사는 뜨거운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의 러브신은 마치 육박전을 치르듯 치열한데 점령자와 피점령자 간의 맹렬한 공격과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 뜨거운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막여사가 사랑과 임무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그녀와 이 간의 사랑과 욕정도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한편 이 영화는 대만이 2008년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으로 제출했으나 아카데미측은 이안 감독이 대만 사람이라는 것 외에 특별히 대만 작품이라고 드러낼 것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아일랜드 에튜드'(Island Etude)'로 교체됐다.
/한국일보 미주본사 편집위원ㆍ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원 hj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