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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내가 만일 평창이라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후 개인적으로 맨 먼저 떠오른 인물은 역대 최장수 문화부 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조용히 물러났던 유인촌 전 장관이었다. 그가 추진했던 역점 사업 중 하나가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이 상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평창의 공로자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 역시 대통령 문화특보로 복귀하기 직전까지 한 순간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유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취임한 뒤 올 1월 2년 11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임기 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반환 등을 추진했고 지난해 말 2022년 월드컵과 이번 평창 유치를 동시에 지휘했으나 월드컵에서는 쓴맛을 봤다. 하지만 평창의 성공 뒤에는 2022 월드컵 유치 경험이 큰 뒷심이 됐다는 역설도 나온다. "한국이 국제스포츠 행사를 쇼핑하듯 한다"는 논리를 피해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전원일기 둘째 아들'은 임기 내내 문제적 장관이었다. 그는 "성질이 급해서 실수도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관 유인촌'에서 돌아온 '배우 유인촌'이 국악방송 진행, 소년원 자원봉사 등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정치의 계절인가. 서민들을 위한다는 '화려한 말의 성찬'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다른 쪽에 대고 "근본이 다른 상종 못할 사람들"이라고 했던 그 입에서 나오는 '평화'가 아직은 불편하게 들린다. 그러나 퇴임한 유 전 장관 행보에서 느껴졌던 것은 '진정성'이었던 것 같다. 그는 퇴임 인터뷰에서 "이 정부에서 수혜를 입었으니 이 정부 임기 내에는 개인 이익이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켜내려는 것 같았다. 문화라는 게 빚쟁이 업(業)이다. 영화ㆍ음악ㆍ문학 등 서로가 서로에게 빚지고 굴러간다. 그는 장관 시절 "예술이 도구로 쓰이면 예술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요즘 문화부를 보는 소회는 예술이 도구로 쓰여진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느낌이다. 또 분명한 것은 평창은 유 전 장관에게 빚진 게 많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일 평창이라면 그에게도 미역국 같이 따뜻한 말을 건네줄 것 같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 정도로 평창의 유치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꽃은 원래 고요하게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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